볼 빨간 6개월

딸의 라이프스타일

by 이상우

지난번 딸에 대한 글을 올렸던 날 재하는 뒤집기에 성공했다. 그 글에 쓰기를, 게을러서 뒤집지 않는다고 흉을 살짝 봤었다. 재하가 그걸 나 몰래 봤는지 나름 자극받은 모양이었다. 딸에게 적절한 동기부여를 한 것 같아 흐뭇했다. 아버지로서 역할을 잘한 것 같았다.



문제는 되집기를 그전부터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리저리로 굴러다니는 게 가능해진 것이었다. 옆에 작은 공간만 있어도 데굴데굴 구른 후 뿌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는 한다. 자다가 새벽 즈음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서 깨면, 이재하가 스핑크스처럼 엎드려 매의 눈을 하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 딸이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은 사랑이 가득 차있었는데, 아빠를 바라볼 때는 욕망이 가득한 뜨거운 시선이었다. 보통 피곤해서 모른척한 채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한다. 눈치는 빨라서 그럴 때면 손을 휘두르며 뺑끼(?) 부리지 말고 일어나서 빨리 자기를 안으라고 한다. 가끔 자다 깬 내 얼굴이 웃기는지 영아 주제에 어른을 비웃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웃지 마 지지배야. 니가 이렇게 생겼거든? 내 얼굴이 네 얼굴이거든?”


아빠 얼굴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오네...


나는 자다 깨면 좀 많이 붓는 편이다. 재하가 쓸 데 없이 그걸 똑 닮아 아침이면 팅팅 붓는다. 나와 아내는 밤새 달덩이가 되어버린 재하를 보며 아침마다 깜짝 놀라 ‘못생김 주의!! 못생김 주의!!’를 외치곤 한다. 아무래도 재하는 나중에 소개팅을 꼭 저녁때 해야 할 것 같다. 덤으로 재하에게 하나 미안한 건 코딱지가 잘 생기는 코 구조를 물려준 것이다. 나는 매일 열심히 씻음에도 불구하고 코딱지가 허구한 날 생긴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자다가 코딱지 생성이 느껴져 깨면 지금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입으로 숨을 쉬며 계속 잘 것인가에 대하여 굉장한 갈등을 하곤 한다. 이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아내는 코 내부가 일직선인지 잘 때 코딱지가 생겨본 적이 없다고 했다. 딸은 나를 닮아 콧구멍 끝에 늘 딱지를 몇 개 달고 있다. 앞으로 코딱지로 인하여 수많은 밤을 번민할 딸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운동능력도 갈수록 좋아졌다. 힘이 장난 아니었다. 6개월 살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자전거 타기를 발이 안 보이게 과하게 했다. 걱정이 돼서 찾아봤더니 그즈음 아기들은 성장통이 있어서 발을 구른다는 거였다. 우리 딸도 그런가 하며 ‘너 다리 아프니?’하고 쳐다봤더니 웃으면서 발로 나를 뻥뻥 차 댔다. 내가 발로 맞으면 ‘아!! 아!!’하며 아파했는데 그 소리가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가끔 중요부위를 가격해서 재하 예비 동생들도 많이 죽은 듯했다. 이재하의 목적은 하나였다. 아빠가 자기를 안게 하는 것.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나는 투덜거리며 딸을 안아줘야 했다.

“아 발로 좀 그만 차. 동생들도 그만 죽이고...”



당연히 다리 힘은 점점 좋아져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균형을 잡아주면 곧잘 서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하체가 튼실한 편이라 우리 딸도 튼튼한 다리와 허벅지를 자랑했다. 소개팅은 저녁때 바지를 입고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다리처럼 손도 팔도 힘이 좋아 ‘혹시 아기장수가 태어났나’ 해서 겨드랑이를 살펴봤다. 날개는 없고 때만 있었다.


나도 앉을 수 있다능...


이렇게 움직이면 밥을 잘 먹어야 할 텐데 딱히 부지런히 먹지도 않았다. 다른 부모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도 자식 밥 먹이는 게 제일 부담되는 일이었다. 어느 날은 분유를 잘 먹고, 다른 날은 모유만 먹고, 어떨 때는 이유식만 살짝 드시고 도대체 종잡을 수 없었다. 이유식은 소고기 국물을 기본으로 하여 채소 하나하나씩 넣어가며 거부 반응이 있나 없나 점검했다. 청경채를 넣었을 때 몸에 살짝 붉은 얼룩이 생겼고, 브로콜리는 생각보다 잘 먹고 그랬지만 특이사항은 딱히 없었다. 기분에 따라 섭취량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건 분유나 모유도 마찬가지였으니. 확실한 것은 소고기 함유량이 많을 때 더 잘 먹는 것 같았다. 한 번은 당근을 넣었을 때였다. 그렇게 안 먹겠다고 떼를 쓰며 구르는 거였다. 양심적 이유식 거부자가 따로 없었다. 귀신같이 어찌 알고 당근은 싫다 하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실수로 소고기를 평소에 반 정도만 넣은 거였다. 벌써부터 고기쟁이라니. 그 일 이후로 가끔 재하가 자다가 울면서 깨면 십중팔구 소고기가 안 들어간 이유식을 먹는 꿈을 꾸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육아 책에 보니 소변량이나 배변량이 충분하면 밥도 양껏 먹은 것이라고 했다. 재하는 우리가 보기에는 별로 먹은 것도 없는 데 똥도 오줌도 잘만 쌌다. 제대로 밥도 먹지 않고 똥은 맨날 싸는 걸 보니 무한동력 아기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분유를 타면 태반은 하수구로 흘러 보내야 했다. 가끔 150cc를 먹어서 엄마, 이모, 아빠에 대해서 어장관리도 열심히 했다. 어느 날 재하가 외갓집 가서도 분유 안 먹겠다고 양 볼이 시뻘게져서 꼬장을 피우자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내비 둬 봐. 굶다 배고프면 찾아 먹겠지.”

“엄마 그러다 경찰서 가!!”

“가면 애 할머니가 시켰다고 할 거야!!!”

한마디 했다가 딸들에게 욕만 잔뜩 먹자 재하 외할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재하 아이 이뻐. 꽃미모네...’만 반복하셨다.



모유는 그나마 먹는 편이었지만 아내가 힘들어하는 게 문제였다. 한밤중에 엄마가 지쳐 자고 있는데 재하가 밥 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아내는 ‘비’처럼 윗도리를 올리고 다시 잔다. 비몽사몽 일어난 나는 재하를 재빨리 들어 각도를 맞춰 젖을 먹인다. 게으른 우리 딸은 엄마 가슴을 찾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손발이나 휘두르며 빨리 밥을 달라 아빠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당장 주지 않으면 새벽 세시에 가마꾼이 되어 ‘부모란 무엇인가. 자식이란 또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거실을 배회하게 해 주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좀 컸다고 눈 뜨지 않고 손으로 더듬더듬하며 엄마 젖을 잘 찾는다.


다만 제멋대로인 우리 딸은 모유를 먹는 척하다 도망 가버릴 때가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잠그지도 않고 가버리는 격이었다. 이건 ‘먹튀’도 아니고 그냥 ‘튀튀’였다. 그래 놓고 머리카락만 잡고 놀려고 했다. 잠도 안 자고 투사처럼 ‘앙앙앙~(쉽게 자지 않겠다!! 절대 먹지 않겠다!!)’을 외쳤다.



아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내 손 안의 인터넷에 몰두했다. 마스크를 한창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중고나라 카페에서 마스크 되팔이를 본 모양이었다. 분노한 재하 엄마는 사이버 전사로 변신했다. 마스크 판다는 글마다 쫓아가서 악플을 달았다. 요새는 업자들도 쉽지 않은지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고 바람잡이들도 꽤 있었다. 혼자는 어렵다고 생각한 아내는 맘 카페로 달려가 사람들을 규합했다. 지지자들을 모아서 중고나라로 다시 뛰어가 마스크 파는 글을 찾아 댓글 전투를 벌였다. 이러기를 밤새 하니 다음날 오후까지 뻗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재하 돌보기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이래서 큰 일하는 사람의 배우자로 살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가 보다. 정의구현을 위해 한창 키보드 배틀에 열중하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옥~ 편이 필요하면 나도 참전할까?”

“안 돼. 자기는 애 봐야지.”


안 떨어질 거다...


재하는 이렇게 아빠가 주로 키웠더니 약간 할머니가 키운 애처럼 되고 있었다. 최신 트렌드에 맞게 ‘엄모 자부’로 양육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딸보다는 중고나라에 엄했다. 그래서 재하는 한동안 응석받이가 되었다. 기침을 하면 아빠가 화들짝 놀래서 안아주는 걸 아는지 안아주지 않으면 마른기침을 계속했다. 다행히 마스크 대란은 곧 가라앉고 아내도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상습적으로 기침하고 있었던 딸을 보고 따끔한 교육(?)을 실시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대체로 기침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 이재하가 눈치를 살살 보며 기침을 한다.

2. 엄마가 ‘너!! 안돼!!’ 하며 주의를 준다.

3-1. (아빠가 보이지 않는가?) 슬그머니 웃으면서 그만둔다.

3-2. (아빠가 보이는가?) 가마 태워줄 때까지 콜록거린다.

재하는 전생에 무슨 사또 가마꾼이었는지 곧 죽어도 가마 타고 원님놀이를 해야 직성이 풀리나 싶다. 덕분에 내 허리는 남아나질 않는다.


크크큭.... 내 안에 흑염룡이 깨어난다...


종종 재하는 기쁠 때나 서러울 때나 가마 탈 때나 ‘음마~ 음마~’를 옹알거렸다. 원래 아기들이 ‘M’ 발음부터 옹알이를 한다고 하니 말을 하기 전 연습하는 모양일 것이었다. ‘음마~’가 무슨 의미인지는 당연히 알리가 없다. 하지만 「이재하 천재설」을 밀고 있는 아내는 ‘음마’가 엄마를 지칭하며 자기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엄마를 앞에 두고 엄마를 찾으며 우는 건 말이 안 된다, 엄마가 따로 있다는 소리냐’라고 했다. 그러다 아내에게 「이재하 천재설」에 반론을 제기하면 ‘이단’이자 ‘사문난적’이라는 경고를 들었다. 재하의 이모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재하 열성교도인 큰 처형은 당연히 「이재하 천재설」을 신봉했다. 별 반응이 없던 작은 처형도 ‘음마~’ 소리를 몇 번 들으시더니 ‘어머~ 우리 재하 천재인가 봐’라며 간증을 시작했다. 알만하신 분이 왜 그러실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딴 소리를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언제인가는 재하가 분유 먹기 싫다고 허리를 꺾으며 '아우어~ 아우어~' 이랬던 적이 있다. 세 자매는 이걸 듣고 '아니야!! 안 먹어!!'이랬다며 '할렐루야'를 외치고 바로 전화기를 들어 「이재하 천재설」을 지인들에게 전도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아빠~’도 짬 날 때마다 가르쳤다. ‘아빠’는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해서 ‘빠~’로 바꿨다. 재하가 입을 오물거리며 따라 하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이재하 천재설」에 대한 신앙고백이 절로 나왔다. 내가 ‘빠~ 빠~’ 거릴 때마다 재하는 방긋 웃으며 내 입모양을 흉내 내려했다. 어쩌면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하지 않을까. ‘빠~’가 나를 가리키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굉장히 흐뭇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 들었다. ‘빠~’는 ‘아빠’도 들어가진 ‘오빠’에도 들어있었다. 얘가 이러다 나중에 오빠들 너무 좋아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그놈의 ‘오빠 놈’들은 다 늑대인데 말이다. 훗날 재하는 저녁에 바지 입고 소개팅할 것이지만 ‘오빠’ 말고 동갑이나 연하랑 하라고 잘 말해놓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재하가 이제 기려고 한다. 배밀이를 넘어서 다리도 움직이려 한다. 조금 있으면 상기된 볼을 하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겠지. 품 안의 자식을 약간이나마 벗어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바라기는 모든 것에 다 느려도 좋으니 부디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