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 육아는 가정해체의 지름길

딸과 지내보면서 드는 짧은 생각

by 이상우

아이를 키우기 전에 ‘독박 육아’라는 말은 대단히 잘 만든 여성단체의 구호 정도로 여겨졌다. 전하려는 바를 선명하게 전달하면서도 적당히 자극적인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이 시대 최고의 도발적 슬로건인 ‘예수천국 불신지옥’에 필적하는 급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남자, 여자 편 갈라서 싸우면 뭐하나. 서로 맞춰가면서 살아야지. 그나저나 남성단체는 왜 저런 거 하나 못 만들지’ 정도로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직접 딸을 키워보니 웬걸, 독박 육아는 상당히 온건한 표현이었다.


육아는 블랙홀이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낮과 밤이라는 시간이 먼저 사라졌다. 병원에 있는지, 조리원에 있는지, 처가댁에 있는지, 우리 집에 있는지 상관없을 정도로 공간감각도 없어졌다. 평소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문장은커녕 단어 하나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오열’이라는 두 음절을 떠올리기 위해 울부짖는 딸을 안은 채 이틀을 고민해야 했다. 말은 더했다. 더듬더듬 옹알이가 따로 없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아기 키우는 것을 시작하기 전에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에 할 창대한 계획들이 넘쳐났었다. 쓰지 못했던 논문도 쓰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요리도 이것저것 해보고 등등등. 지금 그때의 희망찼던 내 모습을 그려보니 헛웃음만 나온다.



우리 재하 그만 울자...


시공간의 개념과 오감이 모두 사라지자 육아를 제외한 모든 고민도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사라졌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돈을 어떻게 더 벌어야 할지 등등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새벽 네 시에 내 앞에서 울고 있는 꼬맹이가 언제 잘 것인지, 이놈의 지지배가 왜 분유를 먹지 않고 모유만 먹겠다고 용을 쓰는지가 훨씬 중요한 문제였다. 미워했던 사람은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친구들의 얼굴도 가물가물했다.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던 첫사랑의 전화번호는 딸내미 주민등록번호 외우느라 까먹어 버렸다.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을 가면 많은 갈굼이 사라진다. 추워지면 전우들이 훈훈하게 둘러앉게 되어서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온몸이 꽁꽁 얼어붙으면 다른 꼬투리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서였다. 지금 나와 아내의 모습이 딱 그랬다. 심지어 육아하는 꿈도 종종 꾸었다. 현실에서도 애를 키우고, 꿈에서도 딸 시중을 들었다. 머릿속에는 ‘육아’밖에 없었다. 이렇게 자식은 모든 고통을 잊고 자기만 바라보게 했다.



가만히 있으면 예쁜데...


그럼에도 아기는 너무 예뻤다. 사실 예뻐야 맞았다. 예쁘지 않으면 내다 버렸을 테니까. 사랑이 무엇인지도 배웠다. 사랑의 정체는 오래 참는 거였다. 다른 글에도 썼지만 이 극한의 인내 체험을 견디게 하는 건 사랑이 분명했다. 사랑이 아니면 이 괴로움을 참을 수도 이겨낼 수도 없었다.


그나마 우리 부부는 둘 다 공무원이라 육아휴직을 운 좋게 같이 쓸 수 있었다. 한 명이 재하를 보면 한 명은 좀 쉴 수 있었다. 큰마음먹으면 한 명이 외출을 할 수도 있었다. 비록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기분전환에는 충분한 말미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설프나마 손발도 잘 맞아 들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역할분담이 되었다. 한 명이 재하의 응가를 닦아주면 한 명은 뒷정리를 하고 있거나, 아내가 재하 밥을 먹이면 내가 우리 먹을 것을 차리고 이런 식이 가능해진 것이다. 가끔 생각하기를 이 과정들을 혼자 한다고 생각하면 ‘헐~’ 소리와 함께 등에 땀이 났다. 자녀를 기르고 있는 여자 친구들이나 친구 아내들에게 아기를 어떻게 혼자 키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돌아오는 답은 ‘그래서 우리 아무개는 외동이잖아^^’가 많았다. 종종 아내가 외출했을 때 벌어지던 사달들을 생각하면 이걸 매일 홀로 해야 하는 사람들이 소위 ‘독박 육아’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제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분명히 알았다. 육아는 혼자 하기 어렵다. 그리고 돌 이전의 아기는 혼자 키울 수도 없다. 서두에서 말했지만 ‘독박 육아’는 굉장히 부드러운 용어였다.


우리딸도 고생이네...


조금 더 생각해본다면 이렇게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은 가정해체의 지름길이었다. 차후에 벌어지게 될 모든 불화의 근원에 이 ‘독박 육아’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다. 아이를 낳았으면 키워야 한다는 그 당연한 말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괴로움, 눈물이 있었는지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분명히 내 자식인데 아이에게 화가 나고 예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 느껴지는 자괴감 같은 감정들까지 홀로 짊어진다는 건 가정을 이룬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과 같다. 당연히 내 편이라 여겼던 사람이 이런 상황을 외면하거나 가벼이 여긴다면 추후 결과가 긍정적이기 어려워짐은 당연하다. 매일 보는 가족은 필연적으로 더 미울 수밖에 없다.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무너짐은 물론이고, 그 사람을 품어주거나 받아주지 못한 부끄러움, 그 사람을 선택한 자괴감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원래 내전이 더 잔인하다. 이유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싸우기에 그렇다. 더 나아가 두 아이를 혼자 키운다? 이건 가족 해산 선언과 마찬가지이다. 따뜻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아이를 낳았는데 육아가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는 이 딜레마가 많은 이를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독박 육아가 빈번히 행해지는 까닭이 아빠와 같은 어느 한쪽 부모가 고의로 자기 자식을 방치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주 52시간이 시행되었음에도 여전히 가정보다는 일, 저녁이 있는 삶보다는 새벽까지 일하는 모습이 권장되는 그런 사회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하는 것이 더 크다. 또한 아이를 낳고 기름을 사회가 책임지지 않고 가정의 문제, 사적인 문제로 한정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출산과 양육도 중요하지만 실적도 밀리지 않아야 하는 모순이 해체되어야 이 독박 육아의 악순환이 해소될 것이다. 지난 고속성장의 시대를 살면서 가시적 성과만이 강조되었다. 일만이 중시되고 가정은 부수적 요소에 불과했다. 이제는 이런 시선을 거두고 가정의 재충전 기능에 방점을 더 두어 휴식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힘을 기울여야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그간 국가와 사회는 독박 육아를 조장해 가정해체의 원인을 만들어왔다. 이제야 출산율높이기를 하는 모습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더불어 육아를 아기 엄마의 경력단절과 같이 여성 문제로 한정 짓는 것도 옳지 않다. 이는 육아와 같이 공적 문제로 전환되어야 할 주제가 사적인 원인으로 한정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여성의 재취업이나 휴직이 보장되면 육아가 해결되는 마냥 독박 육아 해결방안이 축소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특정한 성의 강조는 자칫하면 남녀 성대결로 흐르게 되는 위험성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독박 육아는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누구나 집에서 아기 보는 아빠, 축소 근무와 같이 탄력 근무하는 엄마가 될 수 있어야 하며 아이를 키움에 있어 최소한의 경제적 보장과 복지안전장치는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결국 독박 육아는 돈의 문제이다. 누군가는 밤을 새워서라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동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된 것이 오늘날 출산율 하락과 독박 육아의 근본 원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마련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조명빨...


짧은 시간 딸과 함께 해 본 결과로 육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아빠의 근력과 엄마의 가슴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를 위로하는 데 엄마의 가슴만한 것이 없고, 아이를 즐겁게 해주는 데에는 아빠의 힘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한 명이 다 가지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부모가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를 함께 돌보라는 조물주의 뜻일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씻겨주고 있을 때면 얘는 엄마 아빠가 다 해주니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다시 따져보면 그건 재하보다 우리 부부가 좋을 때일 것 같았다. 언제 우리 셋이 이렇게 웃으면서 기억을 공유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품과 방귀까지 귀엽던 이때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그럴 텐데 이 소중한 때를 독박 육아하는 엄마는 짜증과 피곤,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들어온 아빠는 눈치와 부담으로 보내야 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요즘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두 명이 한 명도 안 낳는 시대이니 이렇게 가다가 대한민국 곧 소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그래서 요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말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가정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 기본이 아닐까 한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육아에 있어 누군가를 무임승차자 아닌 무임승차자로 만드는 현재의 모습들은 건강한 모습이 아니다. 건전한 가정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히 구성원들의 역할 분담과 기여가 있어야 한다. 또 그 역할을 다하게 해주는 것이 국가와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희망을 찾기 어려운 세상에서 아이마저 기쁨이 아닌 가정 분란의 원인이 되어 버리게 하는 건 공동체 의무의 유기이다. 내년부터는 사기업에도 부부가 함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물론 우리의 현실이 녹록지 않아 주위의 눈치가 보일 것은 자명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정이 바로 서는 것이 결국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 사회분위기가 점차 바뀌어 갔으면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부부 육아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독박 육아라는 말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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