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vs모둠 잡곡
우리 외할머니는 말년에 딸 셋을 끼고 살았다. 막내딸과는 같이 살고 첫째, 둘째 딸과는 동네에 함께 살았다. 할머니가 다들 집을 마련해준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해준 것 없는 엄마임에도 어찌나 딸들이 그분을 떠받들고 살았는지 할머니는 느지막한 삶이 행복했다. 다만 점차 감은 잃어갔다. 작은 딸이 사준 비싼 털모자를 무 열 개와 바꿔 온 적도 있었다. 자식들이 빡쳐서 야채 가게에 따지러 가지도 못하게 신속하게 김치도 담가 버렸다. 그럼에도 딸들은 정신줄을 놓았다며 뭐라 그러지 않고 한숨만 쉬었다. 아들 가진 부모는 점점 악에 받치고 딸 가진 부모는 점차 개념을 잃어가는 모습을 많이 봐왔는데 우리 할머니가 딱 그 짝이었다.
할머니는 심심하면 저녁에 집으로 딸들을 호출했다. 희한한 물물거래야 참겠지만 다들 생업이 있는데 시간 많은 어르신 장단에 매일 놀아줄 수는 없었다. 딸들은 엄마의 연락을 종종 속칭 쌩까게 되었다. 조바심이 난 할머니는 손주인 나에게 까지 전화를 했다.
「상우야 큰일 났으니 얼른 와 본나」
「네??」
뭔 일인가 하여 할머니네 달려갔더니 나에게 콩나물 천 원어치를 쥐어주며 시들면 큰일이니 빨리 가서 먹으라고 했다. 곧 나도 할머니의 호출을 외면하게 되었다. 이 양치기 노인은 갈수록 더 재미를 붙여 단체 소환도 가끔 했다. 그러면 우리는 사이좋게 둘러앉아 비싼 깍두기를 씹으며 내일 채소가게 주인을 잡으러 가자고 하곤 했다.
나도 어쩌다 보니 엄마와 또 같은 동네에 살게 됐다. 우리 엄마도 말년에 진입하는 시간에 아들 둘과 동생 둘을 끼고 살고 있다. 하지만 아들들은 딸보다는 만만치 않아 콩나물 따위로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가는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그분도 알기에 나름 머리를 쓴다. 적극적인 제안보다는 수동적이지만 아슬아슬한 심리전을 건다. 대표적으로 앓는 소리가 있다.
「오늘 어디 어디가 아파서 병원 갔었어...」
나는 그것이 의례적 꾀병인 건 알지만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건너들은 며느리 입장에서는 또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얼른 어머님한테 가봐」
「안 가도 돼. 진짜 아프면 병원에서 전화 왔지 집에서 전화 왔겠어? 그냥 오라는 얘기야」
「하여튼 가봐 빨리빨리」
가서 못마땅한 얼굴로 병명과 예후를 물으면 으레 같은 답이 돌아온다.
「내가 언제 오라 그랬니? 병원에서는 죽을병은 아닌데 조심하라 그러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마디 한다.
「... 재하 유치원 졸업식 때 좋은 거 해주슈」
「그럼 당연하지. 그런데 왜?」
「아마 초등학교 졸업식은 못 볼 것 같으니까」
「xxxx!!! xxx!!」
욕을 할 때는 누구보다 힘이 넘친다.
아픈 건 부가적인 것이고, 결국 목적은 다른데 있었다. 오늘 장보며 샀다는 작은 통에 들은 잡곡 모음을 수줍게 내민다. 당장이라도 현미를 안 먹으면 당뇨병으로 아들이 쓰러질까 봐 그러는 건 알겠는데 하루 종일 애 보느라 힘든 아들내미를 오라 가라 할 건 아니니 기가 찼다. 그것보다 당신 모친과 겹쳐 보이는 그 모습이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긴 것도 진짜 닮았는데 하는 행동이 영락없는 콩나물 노인이었다.
「아니, 할머니 생전에 그렇게 욕을 해 놓고서는 어쩜 이렇게 닮았대요? 소름 돋네 정말」
「야 그 콩나물은 천 원어치고 이건 비싼 거야!!」
지난 시간의 부모들은 ‘마음’이라는 것에 의미를 많이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아버지들은 마음만 있었고, 어머니들은 마음이 너무 앞서서 문제가 됐던 일들은 좀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딸을 키우며 내 마음만 너무 앞서면 안 된다는 점을 알아가고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행동’이 수반되어야 부모와 자식 간에 얼굴을 붉히는 행동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하기는 알맞은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먼저 돌아보고 자제하는 태도가 필요하니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인 것 같다. 지금이야 아직 아기니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지만 지금부터 내 자세를 다져놓지 않으면 언젠가 사춘기의 딸에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를 외치는 참사를 벌일지 모르는 일이다. 미리 조심해야지. 그래도 가끔 콩나물로 긴급호출을 하던 그분이 가끔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거보면 ‘마음’이 제일 오래 남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