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시름시름 아팠다. 열과 오한이 심했다. 턱도 많이 부었다. 혹시 볼거리 일지 모른다기에 아내와 딸은 처가댁으로 대피시켰다.
수면잠옷에 이불 세 개에 난방도 때며 전기장판 위에서 홀로 덜덜 떨었다. 곁에 가족도 없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유언을 했다. 첫 번째, 재가를 허용한다. 두 번째, 모든 재산은 재하에게 준다. 세 번째, 내 유해는 분당에 뿌려 달라. 특히 아빠가 우리 딸 많이 사랑했다고, 재하에게 나중에 꼭 전해달라고 했다. 이제 7개월밖에 안 된 딸이었다. 아빠가 네가 어떻게 컸는지 다 글로 써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갈 수 없었다. 나름 진지했는데 아내는 잘 가라며 멀리 가지 않겠다고 비웃었다. 남편 덕분에 부부의 세계를 못 보고 대신 육아의 세계를 보는 중이라 뿔이 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비슷한 일이 있더라도 새장가는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사랑니 문제였다. 기나긴 세월을 견디고 있던 한 놈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치과에서 들어보니 사랑니가 나는 부분에 염증이 생겨 그렇게 몸살이 났다고 했다. 며칠 전 아내가 그동안 고생했다고 하루 휴가를 준 적이 있었다. 바람이 쌩쌩 불던 날이었다. 그래도 기분 좋다고 얇은 옷만 입고 싸돌아다녔더니 결국 탈이 났다. 바깥나들이 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감을 잃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삼십 년 전쯤 비슷한 일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엄마는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그랬었다. 이가 아프다고, 사랑니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위험하다고도 했다. 심각하게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사랑니 뽑다가 죽을 수도 있대.”
사랑니를 뽑으러 가던 날 엄마는 나에게 도시락을 건네주며 흰 봉투도 하나 보여 주었다.
“상우야, 엄마 말 잘 들어. 이 봉투 엄마 화장대 첫 번째 서랍에 넣어 놓을 테니 혹시 엄마에게 무슨 일 생기면 그때 열어봐, 알았지?”
그날 학교에서의 반나절은 얼마나 길었는지. 마침 또 그날은 엄마가 어린이 하교 길 교통봉사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집에 가는 모퉁이를 돌면 횡단보도가 하나 있었다. 거기에 엄마가 없다면 나는 집에 가서 흰 봉투를 열어봐야 할지도 몰랐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구석을 돌았다. 녹색 깃발을 잡은 엄마가 있었다.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엄마가 싸준 마지막 도시락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우리 아들 두고 엄마가 어디를 가냐고 했다. 나를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니를 빼서인지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사이좋게 손을 잡고 집에 갔다. 그래 놓고 집에 와서는 도시락 반찬은 왜 남겼냐고 나를 때리려고 했다. 나는 도망 다니며 맛없어서 못 먹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마지막 도시락이라기에 기대를 좀 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반찬은 멸치볶음과 두부부침이었다. 반찬통을 열었을 때의 실망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일이 있은 후 당신은 유서 쓰기가 취미가 되었는지 허구한 날 유서를 썼다. 회사 워크숍 갔을 때, 백내장 수술을 했을 때, 심지어 얼굴 기미를 제거하는 시술을 했을 때도 흰 봉투는 늘 화장대 첫 번째 서랍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는 멀쩡히 돌아와 뭐라 뭐라 쓴 종이들을 내가 보기 전 재빨리 찢어버린다.
매번 비슷할 텐데 아깝지도 않냐고 했다. 그랬더니 이제 자기가 얼마나 너희를 사랑하는지의 관용어구 정도는 일필휘지로 쓴다고 했다. 제일 중요한 재산분배내역은 마음에 따라 그때그때 바뀐다고 한다. 너 같은 미운 자식 몫은 줄일 거라고 매번 엄포를 놓는다.
“뭐라고 썼는지 거 내용 좀 봅시다.”
“됐거든. 너는 국물도 없어.”
내 나이 서른여덟, 사랑니 뽑으러 간다고 유서 쓰던 엄마 나이와 비슷하다. 아직 해줄게 많은 자식이 있는 것도 비슷하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 몸살 가지고는 아프다고도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켜야 될 사람이 생기니 겁이 덜컥 난다. 그간 유서를 쓰는 엄마를 희한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딸이 생기니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비록 아이가 커가는 날을 못 보는 일이 있더라도 당신 마음만은 그 시간을 함께해주기를 바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다음 주 즈음에 사랑니를 뽑을 수도 있는데, 나도 딸에게 몇 자 적어놓고 갈지도 모르겠다. 얼른 돌아와 아내가 훔쳐보기 전에 없애버려야지.
사랑니는 지치(智齒)라고 한다고도 한다. 지혜를 알게 될 때 나는 치아여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될 때 나는 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나도 부모의 마음을 이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