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겨둘 세대는 언제부터일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집집마다 사진기가 있지 않았다. 사진기 자체가 워낙 비쌌을뿐더러 사진을 손에 쥐려면 필름도 사고 인화도 해야 했다. 돈이 드는 그런 일이었다. 그러니 유년 시절의 사진들은 특별한 날이었든가 애들이 너무 예쁠 때 가끔 찍어 둔 걸 것이다.
그럼 돈 들지 않는 글을 써 놓았으면 좋았겠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애보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그저 아득해진다. 그 와중에 글이라니.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엄마도 육아일기를 쓰긴 했었다. 예전에 어디서 굴러다니던 것을 주워서 봤다. 한 달에 다섯 개 썼더라. 태어나고 사흘 연속 나름 길게 쓰고, 일주일 후에 적당히 하나, 한 달 지나고 짧게 하나 남겼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대충 ‘살기 힘들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분은 내가 군대 갔을 때도 일기를 쓰셨다. 단 이틀이지만. 공책 표지는 예뻤다.
이야기를 안 써놓은 것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게을러터진 나도 그렇다. 범 같은 아내가 무서운 눈을 하고 쳐다보지 않았으면 재하가 아무리 예뻐도 정기적으로 글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 예전 이야기를 들으려면 주로 주변인들의 증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구전은 곧 설화가 되고 바로 전설이 되어 버린다. 태어나자마자 90㎜를 먹었다느니, 9개월부터 말을 했다느니, 세 살에 신문을 줄줄 읽었다느니, 박혁거세가 따로 없다. 교차 검증도 해보았지만 저런류의 이야기들은 경쟁이 붙어 더 자극적으로 윤색되어 버린다. 어느새 걷잡을 수 없어진다. 그 이야기들이 진짜라면 내가 이렇게 살 리가 없다. MIT에서 물리학 강의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우리들에게 디지털카메라가 오셨다. 카메라 폰과 스마트 폰도 오셨다. 덕분에 200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아기들의 부모들은 자식이 갓난쟁이였을 때부터 일상을 넉넉히 남겨놓을 수 있었다. 모바일 메신저가 활성화되면서 방금 찍은 따끈따끈한 영상을 온 가족이 돌려볼 수 있게 되었다. 동영상이란 것은 어찌나 깔끔한지. 나보고 우리 딸 첫걸음에 대해 쓰라면 가슴은 벅차오르지만 두 번 읽기 힘든 부담스러운 글이 나올 텐데, 몇 메가짜리 파일은 건조하고도 따뜻한 화면으로 우리 가족에게 길이 남을 선물을 해주었다.
뭐 그래도 우리 딸은 아빠가 엄마 눈치를 열심히 보며 자기에 대해 써 놓고 있으니, 나중에 어릴 적 이야기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은 더 풍성하지 않을까 싶다. 「위인 이재하」가 된다면 평전에 인용될 주요 자료는 내 글이 될 것이고 말이다. 혹시 아나? 재하 초기 인생에 대한 논문이 나오면 글머리에 ‘이 연구는 이재하 아버지가 남겼던 기록을 기반으로 하여~’라고 누가 써줄지. 장난이고 훌륭한 사람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가끔 딸이 꺼내보고 마음 훈훈해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딸이 살면서 많은 문자들을 보겠지만 아버지가 썼던 이야기는 무언가 특별하겠지.
사실 그동안은 썼던 글들을 많이 남겨 놓지 않았다. 일기도 종종 썼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 찢어버렸다. 웹상에 남겼던 글들도 꽤 많이 지워버렸다.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기 귀찮고 되새기기 부끄러워서 그랬다. 조선 중기 문신 남곤이 유언으로 자기가 쓴 글을 모두 태워버리라고 했다는데 그 마음 이해한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 물론 요새는 잘 못 지운다. 아내가 추궁할 것이라 그렇다.
“왜 지워버렸냐?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것이냐? 배후를 어서 말해라”
아무튼 그런 반성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딸에 대한 것들만은 예외였다. 하도 전화기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다 보니 용량이 금방 차 버렸다. 외장 하드와 웹 클라우드에 저장을 하고 전화기는 막상 비우려고 하니 사진 한 장 지우기 어려웠다. 엉망으로 찍혀 손가락이 일곱 개쯤 되는 사진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없는 용돈 쪼개어 고용량 SD카드를 하나 샀다. 바라는 건 이 카드의 저장 공간이 다 차 버리기 전에 더 큰 용량의 신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때도 어느 것 하나 버리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빠와 굳게 약속한 그날의 재하
우리 딸의 돌잔치가 저번주에 있었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아빠를 보고 재하는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빠, 지금까지 키워줘서 고마워요. 내가 어른이 되면 버는 돈의 30퍼센트씩 아빠에게 줄게요.”
“세전 세후?”
“세전이지”
나는 분명히 들었다. 너무 감동이어서 우리가 나눈 대화를 이렇게 분명히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교차검증해봐도 좋다. 재하 엄마도 그건 사실이라고 증언해 줄 것이라 믿는다. 재하야, 한 살 축하하고 늘 건강하게 자라렴. 약속은 잊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