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엄마 뱃속에 있을 적에 아내와 농담을 했던 적이 있다. 재하는 아빠 엄마의 성격/외모 중에서 무엇을 취사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최선의 조합으로 아빠의 성격과 엄마의 외모, 최악의 조합으로 아빠의 외모, 엄마의 성격을 골랐다. 외모는 아내가 나 보다 낫다고 우리 엄마도 인정을 하는 바였다. 평소에는 나보고 잘생겼다 하더니, 아기 생기니까 ‘너 보다는 애기 엄마 닮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했다. 사실 성격도 따지고 보면 아내가 나은 면이 많다. 아내는 부지런하고 사람들에게 싹싹한 반면, 나는 매사에 의욕이 별로 없고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재하가 아빠 성격을 닮았으면 했던 것은 생활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거나 군소리 없이 먹고 초저녁부터 자는 편이다. 아내는 맛있는 것만 먹고 밤새 논다. 이렇듯 키우기는 아빠 스타일이 편할 것 같아 내 성격을 닮았으면 했던 것이었다.
인생은 바라는 것의 반대로만 이루어진다고 재하는 아빠 얼굴과 엄마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다. 외모야 본인의 문제이지 나한테 피해 주는 건 별로 없다. 가끔 그냥 거울을 보는 것 같아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얼마 전 자다 깼을 때는 눈앞의 이재하를 보고 유체 이탈한 줄 알았다. 그러나 성격은 육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 딸은 늘 미슐렝 가이드 심사위원처럼 엄중히 먹고 제 때 자지 않는다. 이게 어떤 건지 애 키워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아무거나 먹자...
밥이야 간식이나 과일로 대충 때울 수 있다고 치자. 잠은 아니다. 밤이든 낮이든 재하가 자야 나도 쉴 수 있다. 밤에는 애기 엄마가 가슴으로 어찌한다 하지만 나 혼자 보는 낮에는 도리가 없다. 안아주고 달래도 소용이 없다. 아빠 너무 피곤하다고 사정을 해봤자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렇게 뛰어놀아도 체력이 어찌나 좋은지 ‘얍~얍!!’ 기합으로 졸음을 극복해낸다. 좀 자라고 전신 안마를 해주면 개운한지 다시 뛰어 나간다. 하품하는 모습에 하루 이틀 속은 것이 아니다. 가끔은 낮잠을 제끼는 딸을 보며 상처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지 않는 딸에게 상처 받지 않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제 더 이상 하품 따위에게 속지 않는다. 하품하면 잔다는 걸 믿는 건 미신이나 마찬가지이다. 간단했다. 그냥 얘가 잘 거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으면 되는 거였다. 입을 쩍 벌리면 두 시간 정도 있다 자겠거니 여기면 되었다. 멈추면 보이고 비우면 채워진다고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으니 재하가 자지 않으면 그냥 그런 가보다 하게 되었다.
아이 키우는 건 마라톤과 비슷한 것 같다. 페이스 조절을 늘 해야 한다. 딸이 하품을 했다고 옳다구나 달려들어서 전력으로 어르면 나만 힘들고 지치는 거였다. 재하가 입을 여는 기미만 보여도 득달같이 안아 들었던 때에는 자지 않는 딸에게 표정이 곱게 나올 리가 없었다. 원망하는 표정을 보내는 나를 보며 딸은 왜 그런 얼굴로 자기를 보냐고 눈치를 보낼 뿐이었다. 애초에 재하는 잘못이 없었다. 안 졸려서 안 잔다는데.
거울 그만 보고 잠 자자
다만 조금 지내다 보니 그래도 재하가 잘 것이라는 효과적인 신호도 알게 되었다. 바로 ‘응가’였다. 볼일을 보면 심신이 안정되는지 토닥토닥해주면 잘 자는 경향이 있었다. 낮뿐 아니라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안 자고 돌아다니는 날에는 꼭 똥을 싸고 잤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재하의 엉덩이에 꽤나 민감했다. 어제도 그랬다. 재하가 자지 않고 방귀만 붕붕 뀌자 우리의 모든 신경은 딸의 엉덩이에 가 있었다. 재하가 냄새나는 방귀만 뀌자 참다못한 아내는 이렇게 방귀가 잦은데 똥이 안 나올 리 없다며 핸드폰 플래시를 들고 재하 엉덩이를 샅샅이 살폈다. 항문검사 수준이었다.
“자기 그거 인권침해야. 아기도 인권이 있어”
“아니야. 기다려 봐 봐. 똥을 숨겨놨을지 몰라. 내가 찾아낼 거야”
아내는 실망해서 돌아누웠지만 딸은 고약한 향기를 계속 흘렸다. 나도 이 지경인데 왜 응가가 안 나오나 싶어 코를 거의 재하 엉덩이에 대고 있었다. 아내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나한테 인권침해라며 그거랑 무슨 차이가 있냐?”
초조한 우리와 달리 재하는 태평 그 자체였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일을 보았다. 그리고 곧 잠들었다.
어렸을 때 부모에게 가졌던 가장 큰 불만은 왜 나의 이야기를 안 들어주냐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커서 자식을 키우게 된다면 꼭 아이의 입장을 존중해주고 그 말을 들어주겠다고 다짐했었다. 막상 재하와 지내다 보니 하품을 하면 바로 잘 것 같다고 지레짐작이나 하고 있을 뿐이고 내 마음과 같지 않은 딸 앞에서 실망한 채 한숨만 푹푹 쉬는 아빠가 되어 간다. 아직은 대화가 어려운 아기이다. 몸이 힘들기에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일 수 있다. 사람을 키우는 건 그만큼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제 겨우 16개월 함께 지냈을 뿐인데 이렇게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면 십 수년이 흐른 뒤 딸과 말이 통 한다한들 마음 편하게 지켜봐 주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딸과 함께 지낼 시간 속에서 재하의 때와 나의 기대는 엇나갈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하품은 별 의미가 없었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내 바람이 앞서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겠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재하가 무언가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 또한 마음에 새겨야겠다. 물론 못해도 상관없다.
마지막으로 이제 똥같이 '보이는 것'만 믿어야지. 응가하면 자니까 장운동에 좋은 것을 주로 먹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