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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Aug 24. 2020

군자의 복수는 다른 사람이...

모기와 둘이서

화장실에서 벽에 붙어 있는 모기와 만났다. 볼일을 보던 중이라 서로 어색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딸을 위해서 저 놈을 살려 보낼 수 없었다. 사실 내가 물리기 싫어서였다. 10개월 아기와 있어도 모기 놈들은 꼭 나를 문다.     


서둘러 일을 마쳤다. 수건에 살포시 앉아 있던 놈에게 회심의 박수를 날렸다. 손바닥을 확인했다. 모기 시체는 없고 벌개만 져있었다. 바로 고개를 들었더니 형광등 옆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잡기 위해 호스로 물을 뿌렸는데 실수로 안경만 젖었다.     



약이 올라 닥치는 대로 손뼉을 쳐댔다. 덕분에 혈액순환이 잘되서인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갑자기 초조해졌다. 밖에는 잠시 화장실 다녀온다고 하고 들어왔는데 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변비 환자로 오해할까 두려웠다. 아니면 애보기 싫어서 뺑끼치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싫었다. 나 이상우 인생을 그렇게 비겁하게 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밖에다 대고 “저 똥 싸는 거 아니고 모기 잡는 중이에요!!”라고 소리치기도 구차했다.      



등에 땀이 흘렀다. 화장실 안은 습했다. 문 밖 에어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갇힌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문을 열 수는 없었다. 그놈이 살아나가면 나와 아기를 밤새 괴롭힐지 몰랐다. 냉정해야했다. 나는 찬찬히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았다. 0.5평도 되지 않을 안방 화장실이었다. 거울로 충분히 전체를 살펴볼 수 있었다. 모기는 눈 안에 나타났다가 사각으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박수를 너무 많이 쳐서 건강수명이 2시간은 늘었을 것 같았다. 발도 아팠다. 지압신발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성과는 있었다. 초파리 한 마리 잡았다.     



나가서 장비를 갖추고 들어오기로 했다. 후다닥 문을 열고 나갔다. 얼굴은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밖에서 재하를 돌봐주시던 처형에게 다가가 전기 모기채를 달라고 했다. 그 모기채는 수많은 모기의 피가 묻은 명검이었다. 이 씨 집 딸들은 동체시력이 좋은지 그 막대기 하나면 능히 열 마리의 모기를 상대할 수 있었다.      



몸을 식히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화장실에 다시 들어왔다. 밖에는 내가 좋아하는 귤이 와있었다. 급하게 반만 까먹고 모기를 잡으러 왔다. 귤의 물기가 마르기 전에 모기를 척살하고 나머지 반개를 ‘훗... 역시 별거 아니었어,,,’하며 먹을 생각이었다.      



천천히 벽을 살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모기는 날개 힘이 약해 벽이나 등에 붙어서 쉰다고 했다. 보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였다. 포기하고 나오라고 유혹하는 에어컨 소리만 힘차게 들렸다. 벌써 땀이 났다. 또다시 자체 감금이라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반드시 잡아야 했다. 혹시 물릴지 몰라서 계속 몸을 움직였다. 땀이 눈물처럼 흘렀다. 축축하고 더웠다.      



한참을 여기저기 노려봤는데도 모기는 안보였다. 보이는 모기는 모두 사람에게 멸종되고 투명 모기만 살아남아 진화했나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팔이 따끔했다. 그놈이 물고 갔다. 그것도 모기채 들고 있던 팔이었다. 모기는 자기 존재만 살쩍 증명하고 슬쩍 사라졌다. 난 모기에게 능욕을 당했다. 분이 나서 정말 눈물이 났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이 부끄러워서 세수를 하고 밖으로 터덜터덜 나왔다. 재하가 기어와 다리에 앵겼다. 그 꼴이 뭐냐는 듯 싶었다. 귤은 다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처형이 안쓰럽다는 듯이 보며 말했다.

“잡았어요?”

“... 아니요. 당했습니다. 팔만 물렸어요. 그리고 어디 갔는지 없더라고요”

“어째 재하보다 제부가 더 잘 물리네. 모기는 하수구로 들어가 버렸을 거예요”

그 말을 듣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가 하수구에 물을 잔뜩 뿌렸다. 정신승리라도 필요했다.

“... 잘 가라. 결국 내가 이겼다.”

그러고선 혹시 살아올까 봐 무서워 방의 온도를 더 낮추고 화장실 문은 닫아 놨다. 방문도 닫아놓고 거실에 있었다.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오자마자 일러바쳤다.

“모기가 나 물었어... 그놈이 내 팔만 물어놓고 도망갔어...”

“그래? 잠깐만 기다려봐.”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는 잠시 후에 나오더니 자기가 잡았다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건조하게 말했다.

“오!! 어떻게 잡았어?”

“그냥 팔에 날아와서 앉더라고. 그래서 잡았지. 근데 살짝 물렸어.”

그 모기는 우리가 부부라 어리바리 비슷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우리 아내가 나랑 다르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아무튼 모기 도살자 재하 엄마는 깔끔하게 내 오후의 근심을 정리해주었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더니, 다른 사람이 해도 충분했다. 내년 여름을 대비해 더 잘해드려야겠다.


(배경 이미지 출처 : https://www.worldmosquitoprogra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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