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일지] 정신과에 발을 들이다

정신과 진료와 상담치료를 시작하며

by 김오로라

꽃다발이 빠르게 말라가는 계절이었고 창밖에는 낙엽 쓰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그즈음의 나는 딱히 우울하지 않았지만,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분명한 것은 마음속 어딘가가 엉망으로 망가진 느낌이, 항상 들었다는 것이다. 감정이 제각기 잘못된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오랫동안 마음의 목소리를 무시한 결과였다. 그것들을 다시 분류하고 정리하여 보듬어주는 일은 너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으므로. 당시 한 인연이 정신과에 다녀온 본인의 경험을 공유하며 내게 상담을 권유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라는 실낱같은 믿음에 미뤄왔던 내원은 그의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다.


내원 당일, 진료나 상담 전에 구체적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각종 검사를 진행했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퍼즐을 맞추기도 하며 단어를 떠올려야 하는 문제를 풀기도 했다. 세 시간이 넘는 검사들을 모두 마친 뒤, 무기력과 우울감은 낮지만 불안감이 다소 높은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불안이 높으면 강박감이 생기기 쉽고(실제로 당시 결벽증이 있었다), 이는 업무 효율을 떨어뜨려 결과가 나쁠 때 자기비판적인 태도로 이어진다고 했다. 이 패턴이 다시 불안감을 높여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고 덧붙였다. 나는 엄마 따라 용한 점집을 찾아간 것처럼 그녀의 말이 맞는 말이라고 느끼면서도 남의 진단 내용을 훔쳐 듣는 것처럼 심드렁했다. 그녀에게 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내심 생각했던 것 같다.



검사지 작성 중 발견한 문장들



내원 사유를 묻는 질문에 어떤 답을 적어낼지 고민했다. 최대한 구체적이면서도 깊숙이 숨은 것을 전부 짐작할 수는 없도록, 당시 골치 아프게 시달렸던 악몽을 자주 언급했다. 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악몽을 자주 꾸는데, 아마 어릴 때 겪었던 경험들 때문인 것 같다고. 그 피해 경험들은 분명 사실이었고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도 맞지만 의사를 찾아온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당장 언어화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게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의사는 내 대답을 들으며 빠르게 타이핑했고 그녀와 나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의사는 내가 타인에게 느끼는 공격성에 관해 설명하면서, 불안감이 높기 때문에 타인의 행동을 실제보다 더 위협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타인의 악의성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하며, 그 작업을 최소화하기 위해 순한 양 같은 사람들만 곁에 두는 거라고 했다. 선한 성품의 주변 친구들을 떠올리며 잠시 뜨끔했다. 하지만 그뿐, 첫 번째 상담은 이대로 안전하게, 전형적인 형태로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의사는 의 공격성에 대해서도 질문하기 시작했다. 대화에서 자기 검열이 잦은 빈도로 일어난 데다 '정의'나 '선' 같은 추상적인 가치에 집착한다는 점을 눈여겨본 그녀의 잇따른 질문에 결국 어릴 때의 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내가 누군가에게 크게 상처 준 기억으로, 청소년 시기의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사건이었다. 그 사건에 관해 설명하는 동안 몸이 차갑게 식어갔다. 의사가 예비 범죄자 같은 사유로 나를 당장 어디론가 보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녀는 조금 전처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다만 좀 더 느리게, 나와 눈을 맞추며. 그녀는 나조차 듣지 않던 내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형태의 세션이 몇십 번 반복되었다. 언젠가 그녀는 내 이야기를 죽 듣고, 조금 슬픈 표정으로 웃었다. 미소 끝에 왜 자신에게 고해성사를 하냐고 물었다. 무엇을 말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내용이라고 했다. 지금 사람들이 누군가의 곁에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의 과거를 따져서가 아니라, 현재의 그에게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사람의 옳고 그름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매력 때문에 좋아하는 거예요. 과거의 행동 때문에 현재의 당신을 갑자기 싫어한다? 그 사람이야말로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곁에 두시면 안 돼요." 그 모든 말을 듣고서도 그때는 '그래서 매력이 삶의 중요한 요소인가...?'라고 속으로 반문했다.


그러나 나는 주워온 길고양이만도 못했다. 내 감정을 살펴보고 돌볼 줄 아는 누군가가 절실했다. 스스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의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가 내게 해 준 말과 내주는 숙제를 스케쥴러에까지 적으며 건강했던 언젠가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다음 시간, 그다음 시간이 되고 다음 달이 연말이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나의 불안과 공격성을 중심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하루는 내가 모든 것을 '정당성'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관계는 그런 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과거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이 없다고 느낀 나머지 그것을 모든 행동의 가장 높은 기준으로 설정한 것 같다고 했다. 불쾌해도 악의가 없는 사람에게는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 싫어하는 누군가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할 때 그 사람을 때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맞는 자신을 상상하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그 말을 계속 의식적으로 떠올렸다. 과거에 매여 현재를 잃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