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원을 본다는 것
다음 줄로 시선을 옮기시기 전에, 잠깐 주위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무엇이 들리시나요? 지금 제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이곳에서는,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와 제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두 개 건너 테이블에 자리한 어떤 이들의 말소리가 음악에 섞여 들립니다. 어디에서 제가 이 글을 두드리고 있는지 짐작하셨겠지요. 그런 느낌으로, 떠올려 보세요: 서킷의 트랙 위를 달리는 스무 대의 자동차들을. 엔진들이 내는 소리를, 비좁은 운전석에서 바쁘게 기어를 바꾸며 스로틀을/브레이크를 밟는 드라이버를, 헤드셋을 쓴 엔지니어들을, 피트 크루들이 손에 쥔 휠 건을, 관중석의 함성을, 마샬들의 깃발 신호를, 서킷 위를 날며 그 모든 것들을 찍고 있는 헬리콥터의 중계 카메라를.
이것은 탈것 경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포뮬러 원(Formula 1; 이하 F1)을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예요. F1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F1을 보지 않는)사람들은 제게 물어봅니다: 왜 보죠? 그게 뭐가 재밌는데요? 아마도 다른 스포츠를 보는 사람들한테도 이것과 똑같은 질문을 할 수 있겠지만, 그에 대한 답변은 제각기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결론에 해당하는 제 답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F1의 아름다움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자동차, 사람
F1의 공식 명칭은 FIA Formula 1 World Championship입니다. F1은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싱글 시터 레이스 중 가장 높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모터스포츠 대회로, FIA로부터 수퍼 라이센스Super Licence를 받은 사람들만 드라이버로 참가할 수 있습니다. 한 시즌은 대체로 3월에 시작해 같은 해 11월쯤에 끝나고 그 동안 열린 개별 그랑프리Grand Prix의 결과를 종합해 그 시즌의 챔피언을 가립니다.
F1 드라이버와 경주용 자동차의 관계는 야구 선수와 야구 장갑이나 테니스 선수와 라켓같은 관계와는 달라요. 모터스포츠motorsports라는 말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 F1을 비롯한 자동차(그리고 다른 탈것들)경주에서는 기계와 인간의 공생-관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또한 그것이 F1 특유의 매력을 만들어냅니다. F1에서 자동차는 분명 도구지만, 차에 탄 사람이 그것을 다루는 솜씨가 경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F1의 차들은 그랑프리가 열리는 주말마다 서킷에서 만들어집니다. 각 팀의 본부에서 엔지니어들이 설계해 부품들을 제작하고, 미캐닉들이 개러지에서 조립하는, 오직 레이스를 위해 만들어지는 이 차들은 복잡하고 섬세한 기계입니다. 경주에 필요하지 않은 부분들은 모조리 제거해,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차체는 안락한 승차감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죠.
금요일 오전과 오후, 토요일 오전에 세 차례 치르는 연습주행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최적의 셋업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토요일 오후에는 일요일에 펼쳐질 레이스의 출발 위치를 정하는 퀄리파잉 세션이 있고, 일요일의 레이스가 그 그랑프리의 최종 순위를 결정합니다. 일요일, 레이스를 앞두고 출발 위치에 정렬하는 순간까지도 F1 경주용 차량이 '완성된' 상태로 서킷에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 거예요.
미캐닉들은 차를 조립한 이후에도 금요일과 토요일의 연습주행을 통해 트랙의 특성이나 개최지의 날씨를 감안해 차와 타이어의 셋업을 조정합니다.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달리기 위해서 엔지니어와 미캐닉은 자동차라는 기계의 가능성을 드라이버의 신체의 효율성과 함께 최대로 이끌어내려 하지요.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이전의 셋업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아요.존재하는 수많은 변수들에 잘 적응할수록 더욱 상황을 잘 통제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오늘날의 기술력이라면 F1에서 자동차의 '가능성'을 지금 드러나 있는 성능 이상으로 끌어올리고도 남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것은 모터'스포츠'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람들, 특히 드라이버의 역할이 일정 정도 밑으로 줄어들지 못하게끔 규정이라는 형태로 제한을 두고 있어요.
F1에 참가하는 열 팀, 스무 대의 자동차들은 더 이상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속도의 벽을 깨기 위해 - 어떤 절대적인 기록을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토요일의 퀄리파잉 세션에서 세운 자기 기록을 바탕으로 일요일에 각자의 자리에서 출발해 가장 먼저 다른 차들을 앞서 완주하려 하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곧바로 추월당할 수 있습니다. 레이스 도중에는 - 퀄리파잉 세션 때도 마찬가지로 - 모든 게 '진짜'고, 시뮬레이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트랙에 흩어진, 닳아 떨어진 타이어 조각들까지도.
질주의 스펙터클
동물도 인간도 넘어선, 기계를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빠르기: 모터스포츠의 매혹은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통제하는, 드라이버와/기계와/레이싱 팀 크루들이 이루는 조화. F1의 경우 레이스 평균 시속은 200Km대에서, 스피드 트랩에 찍히는 최대 시속은 340Km대가 나오기도 해요. F1 캘린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느린 구간인 모나코의 "헤어핀", 턴 6에서조차 시속 44Km 정도가 나오고요. 그러나 F1에서는 누가 가장 빠른지를 절대-속도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누가 가장 빠른지는 그들이 기록한 시간, 말하자면 상대-속도가 결정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치르는 퀄리파잉 세션을 볼까요. 0.001초 단위에서 차이를 다투는 이 때에 종종 레이스보다 치열한 접전이 펼쳐져요. 기록 경기인 셈인 이 퀄리파잉 세션은 곧 '시간'의 문제를 속도의 힘을 빌어 공간이라는 결과로 옮겨 오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세션이 진행되는 동안, 자기 팀의 피트에서 출발해 스타트/피니시 라인을 기준으로 한 바퀴를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돌아오는 드라이버가, 일요일에 열리는 레이스에서 가장 출발에 유리한 자리 - 맨 앞 - 를 가져가게 되지요. 세션 중 최고속력을 누가 기록했든 상관없습니다. 서킷의 스피드 트랩에 남은 숫자보다 중요한 쪽은 드라이버가 기록한 시간lap time이니까요.
일요일에도 마찬가지예요. 서킷에 따라 다르지만, F1 레이스에서는 대략 50에서 60랩, 300Km 정도의 거리를 누가 가장 '먼저' 완주해내는지를 겨룹니다. 토요일에 좋은 기록을 낸 드라이버라면 남들보다 조금 앞에서 출발하는 이득을 누릴 수 있지만 그것이 레이스 전체의 결과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F1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질주의 순간은, 역설적으로 멈출 때이기 때문입니다.
피트 스톱Pit Stop이라 불리는 이것은, 레이스 진행 중에 드라이버가 소속 팀의 개러지 앞 지정된 위치에 들어와 잠시 차를 멈추어 타이어를 바꾸고, 때로는 간단한 정비 작업을 마친 다음 다시 트랙으로 복귀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이를 맡는 각 팀 미캐닉들은 피트 크루라 불리는데, 정확한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차를 세우고 - 들어올리고 - 타이어를 교체한 다음(가끔은 프론트 윙 교체나 데브리 제거 등의 할 일이 더해지기도 합니다) - 내리고 - 보내는 일들을 2초대 초반, 길어야 4초 이내에 모두 마무리해내죠. 레이스 도중 언제, 몇 번이나 피트 스톱하는지, 그리고 이 '멈추어 있는 동안'의 과정들이 얼마나 빠르게 실수 없이 이어지는지는 레이스 스타트 직후의 폭발적인 질주나 앞자리를 놓고 드라이버들이 스칠 듯 붙어 자리 싸움을 할 때 못지않게, 때로는 그보다도 더 흥미진진합니다.
의도적으로 서행을 강제하는 때도 있어요. 사고나 악천후 등으로 정상적인 레이스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 트랙에 나오는 세이프티 카Safety Car 가 상황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지요. SC로 표기되는 세이프티 카 상황에서는 트랙 전체 범위에서 드라이버가 임의로 앞선 차를 추월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세이프티 카는 F1 차량들보다야 느리지만, 지나치게 느릴 경우 타이어 온도나 차량의 냉각 계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일반 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들보다는 훨씬 빠르게 달립니다. SC는 그동안 만들어졌던 차들 사이의 거리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해제 직후 실질적인 레이스 재-시작 상황을 빚어내기 때문에, 피트스톱과 함께 또다른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지요.
멈추고, 천천히 가게 만드는, 이러한 규정은 역으로 경쟁을 위해 존재합니다. 깃발 신호와 타이어 바꾸기, 강제 서행, 그런 규칙들은 일상 세계 - 이 경우라면 서킷 바깥의, '일반 도로' - 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더러, 0에서 300Km/h까지 가속하는 데에 9초가 채 걸리지 않는 기계가 품고 있는 가능성에 제동을 거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런 가능성을 지닌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의 가능성에, 레이스에 집중하고 보는 사람들이 강렬하게 몰입하게 만드는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규정이 그어 놓은 범위 안에서, 그 한계에 도달하려고 - 가끔은 그 한계 자체를 옮겨 버릴 만큼 - 노력하는 드라이버들은 멋있어요. 달리는 차들의 움직임은 복합적이고 구체적이며 때로는 놀랍기까지 합니다. 운전하는 자신과 운전하고 있는 기계의, 가능성의 끝을 시험하듯 질주하는 순간들. 시작과 동시에 사라지기 시작하는, 아주 짧은 순간 그리고 순간들의 연속.
들을 수 있는 것과 들을 수 없는 것, 본 것과 보지 않은 것
전세계를 돌며 치러지는 F1의 특성상, 모든 그랑프리를 전부 '직관'하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워요. 돈과 시간과 체력이 모두 뒷받침된다든지, 아니면 아예 업계의 한 사람이 되어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그랑프리마다 참석하며 보지 않는다면요. 때문에 F1을 '본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도 중계를 통해 보는 쪽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생겨요. 그랑프리가 열리는 특정한 시공간에서조차도, 서킷 안에 있든 바깥에 있든, 그 구조상 F1을 보는 사람이 한 번에 전체를 조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랑프리 주말의 서킷에선 굉장한 소리들이 나지요. 처음 그랑프리를 직접 보러 서킷에 갔을 때 가장 놀랐던 것도 이 소리들이었어요. 중계에서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들리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귀마개를 꽂아도 들릴 만큼 시끄러운, 소리들. 엔진이 내는 소리, 드라이버가 기어를 바꾸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 나는 소리. 가만히 들어 보면 기계들마다 다른 소리 - 차이를 느낄 수 있어요.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의 버릇 같은 것도 가끔은 짐작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피트 레인 바로 맞은편 자리를 잡았다면 휠 넛을 풀고 조이는 휠 건의 소리들도 들을 수 있겠죠. 전문가라면 셋업의 차이까지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다양한 '소리'들은 현장의 스펙터클을 배가하지만 중계에선 배경의 일부가 됩니다. 반대로, 각 팀 피트월의 엔지니어들과 주행 중인 드라이버가 주고받는 팀 라디오 메시지들은 중계를 통해서는 간간이 들을 수 있지만 현장에선 들을 수 없어요.
시각적 측면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느 서킷에서든지, 아무리 좋은 자리를 잡는다 한들 모든 코너를 전부 한 번에 눈으로 볼 수는 없어요. 사람-눈높이가 아니라 헬리콥터의 눈높이를 빌린다 해도요. 의식하지 않는/못하는 사이 초점은 계속해서 움직입니다. 즉, F1을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와 별개로, 서킷이라는 특정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편집해서 보고 있는 셈이에요.
엔지니어가 되어 피트월에서 헤드셋을 쓰고 시시각각 들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드라이버에게 팀 라디오를 보내는 입장이 되더라도 차의 운전석에는 '내가' 있을 수 없죠. 그러니까 지켜보는 나의 위치 - 내지는, 좌표 - 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조합해, 세계를 편집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그리고 그 사이의 수많은 차이들을 즐기는 것. 그런 판단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게 되나요? 각자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양도, 받아들인 정보를 해석하는 방식도, 그 결과도 모두 조금씩 다르게 마련입니다.
중계 방송을 통해 관전하는 것, 곧 미디어-체계-안에서의 스포츠 감상이란, 보는 습관을 보다 분석적인 쪽으로 변형시켜 왔습니다. 해설이 덧붙으면서 특정한 시각을 무의식중에 공유하게 된다든지, 보이는 것들에 의미를 더하면서(때로는 덧칠하면서) 말이죠. F1 중계는 수십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다양한 각도에서 '세계'를 보여 줍니다. 온-보드 카메라나 헬멧-캠을 통해 달리는 차의 시선을, 드라이버의 시선을 간접적으로 제공해 주기도 해요. 현재 누가 레이스를 리드하고 있는지, 각 드라이버들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특정 차량의 현재 속력 및 엔진 rpm수같은 것들을 시각화해 덧붙이며, 보는 것의 한계를 메꾸는 한편 중계를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도 피트월 사람들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을 주죠: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
하지만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곳에 있는 것. 질주하는 기계들과 지켜보는 나 사이의 거리는 결코 0이 되지 않아요. 될 수도 없고요. 그리하여 F1을 보는 동안에는 '세계'에 몰입하면서도 '세계'와 거리를 두게 됩니다. 이성의 스위치를 내려놓고 경주를 보면서도 한쪽에서는 차갑게 '분석'할 수 있는, 내가 보는 것보다 세계가 멀리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감각들.
다른 스포츠 중계들을 보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을 가지고 있겠지만, F1을 본다는 것은 유독 끝없이 산만한 관객이 될 것을 가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저의 경우, 그랑프리 주말이면 중계 화면/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라이브타이밍 화면/트위터의 타임라인, 이렇게 최소 세 개 이상의 창을 모니터에 띄워 두고서 동시에 지켜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멀티태스킹인 셈이에요. 재미있는 일은, 이 세 화면이 모두 '같은' 시간을 보여 주고 있을 가능성이 한없이 0에 가깝다는 점에서 생겨납니다. 중계 화면이 슬로 모션으로 특정한 순간을 보여 줄 때라든지, 레이스 스타트 같은 중요한 순간을 다시 재생replay해 줄 경우엔 그 어긋나는 정도가 더해지죠. 다른 리듬으로 흐르는 시간들을 저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지각하고 재조합합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가지는지까지는 저는 잘 느끼지/알지 못해요.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팬의 시각으로 순간들을 즐길 뿐이지요.
다시, F1을 본다는 것
그랑프리 주말의 일요일 - 두세 번은 시차 때문에 제가 있는 곳에선 월요일일 때도 있지만 - 의 가장 흥분되는 순간은 역시 스타트 직전입니다. 레이스에 참가하는 차들이 퀄리파잉 결과대로 정렬해 있다가, 레이스 컨트롤의 신호를 받고 추월 없이 서킷을 한 바퀴 돌아 자기 출발 위치에 다시 와 서지요. 정렬이 완료되면, 빨간 신호등 다섯 개가 차례로 하나씩 들어옵니다. 다섯 개가 다 켜졌다가, 모두가 한 번에 꺼지는 그 순간, 질주가 시작됩니다.
왜 F1을 보는지, 왜 이게 재미있다고 느끼는지, 딱 한 순간만을 예로 들라면 저는 이 때를 말할 거예요. 오래 전부터 예상해 온 순간 기대했던 일이 벌어지는. 사실은 늘 반복되다시피 하고 새로운 것은 없을지도 모르는, 변화의 지점: 그러면서도 그게 전부가 아니지요. 예측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 때만큼 예측 불가능한 스펙터클은 F1에서도 드뭅니다.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있어요. 그 긴장과 흥분이 매 그랑프리마다 느껴진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그 순간은 늘 새롭습니다. 빠른 움직임과 함께, 사라지는 시간이 그 자체로 구경거리가 됩니다. 어떤 찰나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설령 내가 좋아하는 팀의/내가 좋아하는 드라이버의 것이 아니었더라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도 해요.
신호등 다섯 개가 하나씩 들어왔다가 모두가 꺼질 때부터, 스타트/피니시 라인에서 체커 깃발이 나부낄 때까지 완전히 똑같은 순간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랑프리가 열리는 주말이면 저는 할 일들을 서둘러 마치고서 중계를 보러 시계를 확인하고 모니터에 창 여럿을 띄울 겁니다. 그곳에는 언제나 제가 예측하지 못한/예측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름답습니다.
(*2013년 여름에 쓰고 겨울에 공개했던 글을 2020년 여름 일부 수정해 업로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