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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Oct 27. 2024

4. 아숙업 말고 너

노르웨이 책빵에서 쓴 글


고 3 때의 일이다. 고3이 되면 모든 수능 교과의 선생님이 비공식적으로 문제집 풀이를 한다. 국어 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지문을 읽으시면서 문장의 의미와 문장 간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50분 동안 한 지문에서 가끔 두 지문을 정도 읽고 문제 풀이까지 할 수 있다. 나는 매 시간 가장 뒷줄에 앉아서 수업을 듣지 않았다. 혼자서 지문을 읽고 문제를 풀면 최소 6개에서 7개 정도 진도를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답지를 꺼내서 오답까지 체크하면 종이 쳤다. 그렇게 내가 정한 국어 영역 진도를 마치면 그날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다른 영역의 수능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수면 시간 1시간을 확보한 셈이었다. 아마 선생님도 내가 다른 걸 하고 있다는 걸 아셨을 거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를 한 번도 나를 지적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신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그렇게 선생님의 눈치 위에서 아슬한 줄타기 하면서 공부를 했다.


모든 학생들의 개인차를 다 고려해 줄 수 있는 교육 기관은 없다. 북유럽 노르웨이 공교육도 마찬가지다. 다만 노르웨이에서는 학생들이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고 실제로 탐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맥락이 초등학교를 지나 중고등학교까지 이어져서 평가에 반영된다는 점이 다르다. 노르웨이 학생들은 주로 에세이를 쓰거나 발표를 통해서 과목 성적을 받는다.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개인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고 쓸 수 있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객관식 평가 문항이 없기 때문에 정답을 찾는 연습 대신 학습한 지식에 자신의 관점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덕분에 아이들의 학업 성취가 점수로 비교되지 않고 아이들은 배움의 과정 안에서 자신의 흥미가 어느 분야에 더 가까운지 생각할 기회도 주어진다. 공부가 아니라면 실기와 실습으로 가득 채워진 실업 학교를 나와 일치 감치 경제 활동을 시작한다. 학교 교육이 개인차를 다 고려해 줄 수는 없지만, 스스로 개인차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노르웨이 공교육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만 인정받는 분위기였던 한국도 변화하고 있다. 선생님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회자되는 학생들은 바로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을 찾은 아이들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집에 있으면서 유튜브를 보며 제빵을 시작한 아이가 있었다. 혼자 영상을 보다가 재미있어 보여 시작했는데 독학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실력이 좋았다. 알고 보니 부모님을 설득해서 오븐까지 따로 들여놓고 매일 3시간 이상 빵을 구웠다고 했다. 직접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지인들에게 주문받은 빵과 디저트를 팔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후에는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제빵사 자격증까지 도전하는 아이였다. 지역의 유명한 과자점 사장님과 진로 상담도 하고, 진로를 잘 찾아서 노력하는 학생으로 다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기도 했다.  


성우가 되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아이는 고3이 되기 전에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해주었다.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에 대본을 들고 대회 연습을 하던 아이였다. 잠을 줄여가면서 개인 팟캐스트 방송도 진행했다. 그 아이가 보는 유튜브 영상은 대부분 성우와 관련된 정보 채널의 영상이었고 소통을 위해서 온라인 카페 활동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지금은 대학 동아리에서 성우 관련 일들을 하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주변에 선언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응원군이 되어 줄 테니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마음속에만 두지 않고 계속 정보를 찾고 알아가다 보면 지원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멘토도 알게 되고, 직접 소통하고 참여하다 보면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어떤 부분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더 잘 알게 된다. 이건 내가 아니라 성우를 꿈꾸던 그 아이가 직접 해준 말이다. 노력만 하면 동시성처럼 주변이 도와준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 네가 뭘 얻을지 결코 알 수 없어.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에서 나오는 대사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따라가면 끌려가게 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질문해 나가면 내가 만든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예전엔 일일이 찾던 것도 이제는 핸드폰에 까지 들어온 생성 AI 덕분 수월해진 일이 많다. 내가 찾아야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제대로 질문만 하면 된다. 혹은 내가 탐구하고 집중해야 할 주제가 무엇인지만 뾰족하게 찾으면 된다.  


생성 AI 시대에 접어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고유함을 찾아 에지를 세우고 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와 아이디어는 쏟아지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나의 방향을 찾고 내 이야기를 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력하고 시간을 들이며 시행착오와 경험을 해야 한다. 나만의 가치와 목표를 만들고, 이를 위해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배워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만의 꿈을 꾸고, 나를 위한 꿈을 꾸자. 어떤 인공지능도 내 꿈을 정해주지는 못하니 말이다.







프롤로그 - 인생 부도

1. See Far! (멀리 보라!)

2. 에지를 주는 법 (How to Sharpen Your Edge)

3. 선생님, 저 자퇴할래요. (Teacher, I Want to Drop Out)

4. 아숙업 말고 너 (Not Askup, But You)

5. 자기 검열관과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My Inner Critic)

6.  우산을 쓰지 않는 용기 (The Courage to Not Use an Umbrella)   

7. 북유럽에 해가 뜬다는 것은 (When the Sun Rises in Northern Europe)

8. 빈둥거림을 취미로 하려고 (Making Idleness a Hobby)

9.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Kids, Let Me Tell You About Life)

10. 텐트 밖은 노르웨이 (Outside the Tent in Norway)

에필로그 - 디폴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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