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책빵에서 쓴 글
“하루에 7과목, 7교시까지 한다고요?”
“학교 끝나고 또 학원을 간다고요?"
노르웨이 고등학생들에게 한국의 고등학생 일과를 들려주면 다들 고개를 흔든다. '하루 13시간 이상 학교 안에 있기. 학교에서 공부하고 또 공부하러 하기. 방학에도 공부하기.' 아마도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는 붉닭볶음면 챌린지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비단 고등학생만 그럴까. 초등학생도 그렇고,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몇 해 전 한국에 머물 때의 일이다. 주말 아침, 아이들과 나는 모닝 산책을 하고 맥모닝을 먹기로 했다. 맥모닝을 먹은 후, 나와 둘째는 책을 읽고 있었고, 첫째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건너 건너 테이블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 둘째보다 어린,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엄마가 앉은 테이블이 보였다. 수학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아들을 두고 다그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아이는 금세 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가서 구해줘야 하나? 아. 여긴 한국이지.’
노르웨이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다그치는 것이 아이의 입장에서 불편해 보이면 신고를 당할 수 있다. 특히 비유럽권 문화를 가진 부모들은 엄한 가정교육 문화 때문에 오해를 받을 수 있는데 집 안이고 집 밖에서도 조심해야 한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자퇴라는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교사가 된 후에는 자퇴 처리를 해야 하는 경우, 할 뻔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요즘 더 자주 생각나는 학생이 있는데 그 아이도 그중 한 명이다. "선생님, 그냥 저 자퇴할래요."라는 말을 자주 하던 아이였다. 난 그때마다 진짜 자퇴를 하고 싶으면 대책을 세워서 오라고 대답했다. 슬쩍 교무실에 들어와 '선생님, 배고파요' 아니면 '선생님, 배 아파요.'라는 멘트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던 아이였다. 나는 그 말이 “선생님, 저를 좀 챙겨주시겠어요? 걱정해 주시겠어요?”로 들렸다. 학교에선 급식으로 끼니라도 챙겨 먹는데 학교 밖에선 그러지 못하고 더 방황할까 봐 잡아두고 싶었다. 결국 자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지만 그 아이의 인생에 공부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유아기부터 성인기까지 모두가 ‘공부’라는 단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왜 공부하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써먹으려고 그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하는지 나는 그 답을 찾고 있다. 어떻게 하면 배움의 가치가 공부보다 중요해질 수 있을지 고민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공부'와 '배움'이라는 단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보통 공부는 주로 학교나 학원에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특정 과목이나 주제를 학습하는 과정을 가리켜 말한다. 공부의 목표는 성적 향상, 자격증 취득, 또는 졸업과 같은 외부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함이다.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암기하는 방식의 공부는 종종 시간에 쫓기거나 압박을 느낀다.
반면, 배움은 훨씬 더 넓은 개념이다. 공부를 포함해서 경험, 관찰, 실수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배움은 개인의 성장과 이해의 심화를 목표로 하고, 자발적인 호기심이나 흥미에 의해 그 내용에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배움은 학교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직장, 인간관계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배움의 과정에서의 경험과 성찰을 소중히 여기는 환경 속에서라면 공부는 자연스럽게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엄마 이전에 교육자로서 공부가 아니라 배움이라는 활동에 동반자이자 조력자가 되고 싶었다. 교사가 된 첫 해부터 책상 앞에 붙여 둔 것이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이었다. 참고서 밑줄 친 부분을 읽어주고, 교과서를 요약한 필기를 따라 쓰는 수업이 싫어서 교사가 되려 했던 나를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이끌고 싶었던 나는 종종 시스템과 학부모와 동료 교사와 학생 집단과 의견 차이를 겪어야 했다. 노르웨이에서 엄마가 되고, 이곳의 교육 현장을 보면서 고민이 더 많아졌다.
백번 양보해서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대학에서는 배움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사회에 나와서는 단기적인 성과에 휘둘리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배우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공부를 강요하는 학교나 부모, 타인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더 도움이 될지 모른다. 대신 배움의 과정을 함께하는 가이드와 도반을 찾아 나에게 필요한 배울 거리를 찾는데 더욱 집중해 보자.
프롤로그 - 인생 부도
1. See Far! (멀리 보라!)
2. 에지를 주는 법 (How to Sharpen Your Edge)
3. 선생님, 저 자퇴할래요. (Teacher, I Want to Drop Out)
4. 아숙업 말고 너 (Not Askup, But You)
5. 자기 검열관과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My Inner Critic)
6. 우산을 쓰지 않는 용기 (The Courage to Not Use an Umbrella)
7. 북유럽에 해가 뜬다는 것은 (When the Sun Rises in Northern Europe)
8. 빈둥거림을 취미로 하려고 (Making Idleness a Hobby)
9.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Kids, Let Me Tell You About Life)
10. 텐트 밖은 노르웨이 (Outside the Tent in Norway)
에필로그 - 디폴트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