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책빵에서 쓴 글
“그걸 꼭 말로 해야 해?”
-말을 안 하면 어떻게 알아요?
“왜 그렇게 말해요?’
-내가 어떻게 말했는데,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나는 어릴 때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생각을 적절한 문장과 태도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학교에서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고 배웠는데,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하지 않아야 할지 늘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말이 별로 없는 아이가 되었다. 바이러스처럼 공기를 타고 전달되는 소리가 서로를 서늘하게 할 때 나는 더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진심을 전해야 친구가 되고, 마음을 터놓고 도움을 청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어릴 적 (사실은 노부부가 된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와 아빠의 대화는 순탄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너희 아빠랑은 대화가 안돼. 대화가 돼야 말을 하지, 너는 대화가 되는 사람하고 살아.”라고 했다. 가끔은 아빠가 문제였고, 가끔은 엄마도 문제였다. 어린 나의 판단에도 '왜 저렇게 이야기가 흘러가지. 왜 굳이 그런 말을 지금 해서 서로 상처를 주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책에서 언어는 각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반영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을 만나 대화를 많이 나누며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나름 노력도 했다. 대학에서 수강 신청을 할 때 가장 기대했던 강의가 화법 교육론이었고, 스피치나 강의 관련 책도 읽었다. 비폭력 대화 연수도 듣고 워크북도 보며 혼자 연습을 했다. 심리학이나 상담 책도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책에서는 감정을 섞어 말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감정을 빼고 사실이나 의도만 뽑아서 해석하라고 한다. 무뚝뚝하게 말해도 그 안의 마음을 먼저 느끼라고 한다. 그러나 실전과 이론은 다르다. 첫째, 내가 공부한 대로 대화를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피드백을 하기가 힘들고, 둘째 나는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태도를 보일 때 화가 나기도 했다.
말과 글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표현하며, 언어가 인간 존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말과 글로 된 언어를 잘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은 삶의 큰 과업이다. 글은 쓰면 고칠 수 있지만 말은 입 밖으로 나오면 고칠 수 없다는 점에서 의사소통의 대부분이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모두가 좀 더 예민하게 이를 다루었으면 좋겠다.
노르웨이 학교에는 ‘친구 의자’가 있다. 놀 친구가 없을 때 친구를 기다리는 의자다. 같이 놀자라는 의미이고, 나와 이야기해 달라는 의미다. 그 의자에 앉은 친구는 말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고, 다가와 앉는 친구는 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고 이해해 주려고 오는 것이다. 나는 집에도 직장에도 거리에도 그런 친구 의자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경청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표시를 내고, 경청할 자세가 된 사람이 만나면 그 대화는 자연스럽게 성공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 인생 부도
1. See Far! (멀리 보라!)
2. 에지를 주는 법 (How to Sharpen Your Edge)
3. 선생님, 저 자퇴할래요. (Teacher, I Want to Drop Out)
4. 아숙업 말고 너 (Not Askup, But You)
5. 자기 검열관과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My Inner Critic)
6. 우산을 쓰지 않는 용기 (The Courage to Not Use an Umbrella)
7. 북유럽에 해가 뜬다는 것은 (When the Sun Rises in Northern Europe)
8. 빈둥거림을 취미로 하려고 (Making Idleness a Hobby)
9.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Kids, Let Me Tell You About Life)
10. 텐트 밖은 노르웨이 (Outside the Tent in Norway)
에필로그 - 디폴트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