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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Oct 27. 2024

8. 빈둥거림을 취미로 하려고

노르웨이 책빵에서 쓴 글


노르웨이에서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 중에 두 살 어린 동생이 있다. 밝고 적극적인 성격에 운동도 잘한다. 남편과 같은 직업군이라 전문직 워킹맘의 삶을 산다. 워킹맘은 복지가 좋은 노르웨이나 한국이나 다 고단하다. 어차피 고단할 거라면 나도 다음 생에는 기술을 가진 전공을 가질 거라 다짐한다. 아니면 영어를 제대로 마스터해야지 다짐한다! 그래야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살만하다.


이곳에서 나는 지난 10년간 엄마이면서 학생이었다. 밖에 나가 사람들은 만나면 이름과 직업, 사는 곳을 묻는데 그중에서 대답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직업이다. 예전엔 구구절절 내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냥 노르웨이어를 배우고 있고, 글을 쓴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은 편치 않다. 한창 일할 나이이고, 맞벌이가 당연한 나라에서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무능력한 사람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엄마가 작가라고 좋아한다. 아이들이 “엄마는 왜 노르웨이에서 일을 안 해?”라고 물을 때마다 난감해서 엄마는 “글을 쓰는 사람이야.”라고 했는데 작가가 되었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종종 내 책과 내 글을 찾아보며 “엄마는 얼마만큼 유명해?”라고 묻기도 한다. 유명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건 아니라고 답한다. 난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쓸 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라서 할 뿐이다. 돈도 안 들고 시간도 잘 가는 일 중엔 글쓰기가 최고다.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바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이라 지금까지 제대로 빈둥거린 날이 없다. 3년 전에는 다이어트에 꽂혀서 집에서 하루 종일 운동만 했다. 친정 엄마를 보면서 나는 아이를 낳아도 날씬한 몸을 유지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2번의 출산 후 내 몸도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일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가시적인 결과를 스스로에게 보여주는 계기가 필요하다. 수치로 평가할 수 있거나 비주얼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성처럼 남편의 한 마디도 자극제가 되었기에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처음엔 잠깐만 뛰어도 허벅지가 따끔거리고 옆구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달리기는 남편이 함께 해주는 날뛰는 걸로 하고 홈 트레이닝을 결심했다. 나의 다이어트 동반자는 유튜브 선생님이었다. 난 선생님이 시키는 건 참 잘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영상 속 선생님일지라도.  


단짠 & 매운 음식을 사랑하며 평생을 밥심으로 살던 내가 먹는 걸 줄이고 홈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매일 체중을 쟀다. ‘빠졌나? 빠진 건가? 왜 안 빠지지?’ 날마다 체중계에 올라 숫자를 확인하며 조바심이 생기곤 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매일 확인하면 오히려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한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하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그냥 하자, 나에게 말했다. ‘살이 빠지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보다 건강해지겠지.’ 5개월쯤 지나고 나니 체중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매일 몸무게를 쟀더라면 아마 버티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큰돈을 내고 다이어트를 했다면 나에게 종종 화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옆에서 간섭하거나 확인하는 사람이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니체는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이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내적 의지와 결단이 어떠한 외적 환경이나 조건에도 좌우되지 않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장점이다. 때로는 자기를 넘어서는 강력한 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쉼, 휴식, 빈둥거림이다. 많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빈둥거림을 취미로 한다. 자주 시간을 내서 빈둥거린다. 쉼도 있어야 꾸준히 할 수 있다.


나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나에게 휴식 블록을 선물한다. 주변에도 빈둥거림을 권한다. 빈둥거림의 사전적 정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며 놀기만 하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서 ‘아무 일 하지 않고’가 중요하다. 핸드폰도 내려놓고, 음악도 듣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나무늘보처럼 ‘나’와만 빈둥거리는 것이 진짜 빈둥거림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이면 더욱 좋다. 온전한 나와 마주하고, 나와 놀아보는 시간. 나에게 말을 걸어보는 시간. 열심히 사는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프롤로그 - 인생 부도

1. See Far! (멀리 보라!)

2. 에지를 주는 법 (How to Sharpen Your Edge)

3. 선생님, 저 자퇴할래요. (Teacher, I Want to Drop Out)

4. 아숙업 말고 너 (Not Askup, But You)

5. 자기 검열관과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My Inner Critic)

6.  우산을 쓰지 않는 용기 (The Courage to Not Use an Umbrella)   

7. 북유럽에 해가 뜬다는 것은 (When the Sun Rises in Northern Europe)

8. 빈둥거림을 취미로 하려고 (Making Idleness a Hobby)

9.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Kids, Let Me Tell You About Life)

10. 텐트 밖은 노르웨이 (Outside the Tent in Norway)

에필로그 - 디폴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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