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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Oct 27. 2024

7. 북유럽에 해가 뜬다는 것은

노르웨이 책빵에서 쓴 글


51번 버스가 왔다. 나는 강의실을 서둘러 빠져나와 51번 버스를 탔다. 일주일에 3번, 목적지는 내가 과외를 하는 고2 여학생의 집이었다.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40분 정도 지나면 창 밖으로 낯익은 집이 보인다. 대로변에 있는 단독 벽돌 주택 2층 집이다. 창문을 열어본 적도 없고, 들어가 잠만 자고 나오는 곳. 단 한 번도 정을 준 적이 없는 낯선 곳. 그곳이 당시 우리 집이었다.


과외가 없는 날이면 51번 버스를 당시의 남자 친구였던 남편과 같이 타기도 했다. 집에 데려다 주겠다하면 좋으면서도 싫었다. 이 낯선 대문 대신 두 블럭 뒤에 보이는 저 큰 아파트 단지의 엘리베이터가 내 집으로 가는 입구라고 말하고 싶었다. 웃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무엇도 편안하지 않다는 걸 말하지 못했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고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던 시절이었다. 나는 조금만 더 일찍 남편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랬다면 내 지갑 속 들어있는 작은 종이에 적힌 시가 이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은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보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너머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다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흔들릴 때마다 내 곁을 지켜준 시다. 20대의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시가 필요했다. 40대가 된 나는 스스로를 응원하기 위해 이 시가 필요하다. 사람은 자주 외롭고, 힘들다.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 보면 행복은 지속적인 상태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했다. 때문에 행복을 좇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행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외로움도 마찬가지로 본능적이고 찰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이 밀려올 때는 행복이 도망가고, 행복이 밀물처럼 채워지면 외로움이 썰물처럼 밀려 나간다. 자연스럽게 두면 행복과 외로움이 번갈아 오고 간다.  


결혼 2년 차에 노르웨이로 오게 된 나는 3개월 만에 나는 엄마가 되었다. 나의 몸과 마음과 24시간이 통채로 도난 당한 느낌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막중함 속에 지냈다. 노르웨이어는 고사하고 영어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충격에서 나는 더 육아에 집중하며 지냈다. 남편은 타국에서 일도 잘 적응해 나가고 육아도 살림도 모두 잘 해내고 있었다. 주변에서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아이도 건강하고 바르게 자랐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엄마로서 행복했으나 ‘나’로서는 자주 외로웠다. 그럴 때마다 시 구절을 떠올린다. 물밀듯 밀려오는 외로움은 타인이 바꿔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바꿔야 한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도 ‘나’이며, 나를 가장 외롭게 하는 거도 ‘나’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과 외로움 사이를 오가면서 살고 있다. 서로 말을 안 할 뿐이다. 그러니 너무 길게 외로워하지 말기를.


가을이 되었다. 노르웨이의 가을은 깊고 어둡다. 모두가 해를 기다린다. 그래서 북유럽에서는 해가 뜬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산책을 나가야 할 것 같다. 외로움과 행복을 씨줄과 날줄로 짠 스웨터를 입고 가을 산책을 나가보려고 한다.




프롤로그 - 인생 부도

1. See Far! (멀리 보라!)

2. 에지를 주는 법 (How to Sharpen Your Edge)

3. 선생님, 저 자퇴할래요. (Teacher, I Want to Drop Out)

4. 아숙업 말고 너 (Not Askup, But You)

5. 자기 검열관과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My Inner Critic)

6.  우산을 쓰지 않는 용기 (The Courage to Not Use an Umbrella)   

7. 북유럽에 해가 뜬다는 것은 (When the Sun Rises in Northern Europe)

8. 빈둥거림을 취미로 하려고 (Making Idleness a Hobby)

9.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Kids, Let Me Tell You About Life)

10. 텐트 밖은 노르웨이 (Outside the Tent in Norway)

에필로그 - 디폴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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