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책빵에서 쓴 글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란 드라마가 있다. 거기에서 신경외과 교수 송화가 전공의 용석민에게 “너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 인간이라는 점이 좋아”라는 대사가 나온다. 젊은 날에는 완성형인 사람, 완벽한 사람이 대단해 보였다. 졸업장이거나 자격증, 이수증 같이 무언가를 이뤄내서 이루었다는 표시가 나야 보람이 있었고, 부족하고 어설픈 나를 인정하지 못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하다.” –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책을 읽으며 다독인다. 삶은 완벽한 결말을 요구하지 않는다. 완벽한 결말이란 것도 없다. 목표 달성이나 성취가 삶의 전부가 아니라, 그 과정을 차분히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 자체로 충분하므로 그 안에서 행복을 누려야 한다.
20살의 내게 다시 말을 걸어본다. 부족함을 채우려는 조바심 속에서 걱정을 거듭했던 그때의 나에게, 속도 조절을 해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더 많은 것을 바라면서 좋아하지 않는 일에 억지로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20살에 나중에 해야지 하고 미뤄두면 하지 못하고 지나가 버리는 것들이 많다. 30이 되면 더 바쁘고, 40은 또 바쁘다. 그때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때 자연스럽게, 조금은 느긋하게 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두 번째 스무 살, 마흔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어른들의 말만 따라 공부만 했지, 생각을 깊이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앞만 바라보며 지냈을 때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성공만 보인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내 길이 없으니 그들의 길만 정답인 것 같아 보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다. 밖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을 기억해 내야 한다. 내 어린 시절을, 학창 시절에 힌트가 있다. 잘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면 나만의 길을 그릴 수 있다.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도 찾아보자. 그리고 천천히 내 속도로 내 길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
칼 융은 "인간은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자신이 된다."라고 했다.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고, 진정한 내면의 깊이에 닿을 수 있다. ‘이 정도 실력으로 뭘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은 밀어두자. 스스로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린아이처럼 돌보고 토닥여 줄 수 있는 '나'가 되길 바란다. 부정적인 평가로 나를 짓누르는 내면의 검열관을 내쫓고, 내가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 배우고 익히는 여정을 걷길 바란다. 그렇게 하루 나아가며 웃기를 바란다.
그저 그 자체로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 인생 디폴트(기본 설정값)이니 말이다.
프롤로그 - 인생 부도
1. See Far! (멀리 보라!)
2. 에지를 주는 법 (How to Sharpen Your Edge)
3. 선생님, 저 자퇴할래요. (Teacher, I Want to Drop Out)
4. 아숙업 말고 너 (Not Askup, But You)
5. 자기 검열관과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My Inner Critic)
6. 우산을 쓰지 않는 용기 (The Courage to Not Use an Umbrella)
7. 북유럽에 해가 뜬다는 것은 (When the Sun Rises in Northern Europe)
8. 빈둥거림을 취미로 하려고 (Making Idleness a Hobby)
9.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Kids, Let Me Tell You About Life)
10. 텐트 밖은 노르웨이 (Outside the Tent in Norway)
에필로그 - 디폴트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