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아이들은 2달간의 여름 방학 동안 충분히 놀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의 방학 생활에 대해서 쓴 글을 읽은 한 독자가 메일을 보내왔다. 중학교 3학년, 피아노를 전공하는 아들을 둔 부모의 글이었다. 한국에서는 여름 방학이 오히려 ‘입시의 문’이 열리는 시기라는 것이다. 피아노 전공자로 예고에 진학을 하려면 내신과 실기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하는데, 교과 공부에 피아노 연습까지 하려면 방학이어도 쉴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할 건데 공부까지 잘해야 하는 건가요?”라는 질문 앞에 부모도 아이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에도 고등학교 입시가 있다. 예체능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교과 내신 성적과 실기 경력 또는 시험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예고나 체고에서는 실기 만으로 일부 신입생을 선발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학교 내신이 중요하고, 경쟁자가 몰리면 결국 내신 성적이 합격을 좌우한다. 그러나 노르웨이와 한국은 내신을 평가하는 구조가 다르다. 노르웨이 중학교의 내신(Standpunktkarakter)은 시험 점수보다 전 과정에서의 학습 태도와 성취를 중시한다. 성적은 수업 참여도와 과제·프로젝트 수행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발표·구두 시험과 서술형 시험이 이를 보완한다. 객관식 평가는 없고, 상대 평가도 아니다. 친구보다 내가 더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나아진 것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평소 학교 수업에 집중하고 과제를 성실히 하면 된다. 별도의 입시 학원이나 과외는 필요하지 않다.
지난 10년간 노르웨이에 살면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노르웨이 교육은 경쟁하고 비교하는 경험을 지양한다. 대신 함께 즐기고 나누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노르웨이의 예체능 교육도 기술이나 스킬을 가르치는 것을 우선으로 두지 않는다. 흥미와 성장을 기반으로 한 교육, 사회정서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체능 중에서도 음악 교육, 그 중에서도 특히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바로 코릅스(korps)라는 학교 밴드 활동이다. 노르웨이에서는 전국 수만 명의 학생들이 학교 내 밴드 활동(skolekorps)에 참여하며 악기를 배운다. 학교 밴드 활동은 악기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적 기념일이나 학교 행사에서 합주 공연을 하면서 악기 연주의 즐거움과 나눔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딸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밴드는 1959년 설립되었는데 매년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을 초대해서 가을 합주 워크숍, 크리스마스 공연, 봄 공연, 17.mai 공연을 하고, 해외 투어를 하기도 한다. 노르웨이는 이렇게 각 학교 밴드마다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에 이를 지키기 위해 학교와 지역 사회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
학교 밴드의 경우 관악기나 타악기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피아노나 현악기 등을 배울 수가 없다. 다른 악기를 배우고 싶다면 문화학교(Kulturskole)에 가야 한다. 공공 예산으로 운영되는 이 문화 학교에서는 악기·미술·무용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이 문화 학교의 운영 목표 중 하나도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과 공동체 경험’이다. 레슨은 보통 1:1로 진행되지만 주기적으로 합주 공연을 하기 때문에 경청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고, 무대 경험을 통해 자신감이나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음악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이 학교 밴드나 지역 문화 학교에서 음악에 대한 첫 경력을 시작한다. 스스로의 호기심이나 부모의 권유로 시작했다가 점점 흥미가 생기면 꾸준히 실력을 쌓아 전공자의 길을 걷는다. 음악을 전공하더라도 학업은 필요조건이다.
“공부는 필요해요. 하지만 그 공부가 하고 싶은 음악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 세계를 더 넓혀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예고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어린 나이부터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그러니 어깨를 펴고 도전을 즐기면 좋겠다. 모든 경험은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노르웨이의 시원한 바람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