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닮은 병아리를 데리고 왔어."
"응? 병아리?"
둘째 딸은 노르웨이 공립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다. 부활절이 다가 오던 어느 날 책가방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것은 포스케 실링(Påskekylling), 부활절 병아리였다.
"포스케 실링이구나, 어떻게 만들었어?!"
"이게 어떻게 만든 거냐면, 먼저 휴지심을 잘라서 몸통을 만들어. 털실을 자르고, 이렇게 반으로 접어서 휴지심에 넣고, 동그라미가 나오면 다시 이 반대쪽 끝을 끼워 넣어. 그렇게 계속하면 돼."
"눈도 붙이고 입도 붙였네. 세 개나 만들었어?"
"응. 이건 엄마고, 이건 아빠고, 이건 나야. 언니 거는 내일 만들 거야. 잘 만들었지!"
딸아이가 만든 병아리 장식을 보니 부활절 연휴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노르웨이에서는 부활절이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큰 명절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긴 겨울을 마무리하고 봄을 맞이하는 전환점 같은 날이다. 노르웨이 전체가 3월이 되면 부활절 연휴를 준비하면서 설레는데 명절이 아니라 이벤트 같은 느낌도 든다.
가장 발 빠르게 부활절 준비하는 곳은 꽃집과 상점이다. 꽃집에서는 갖가지 노란색 꽃들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부활절을 상징하는 노란 수선화는 부활절 수선화(Påskelilje)라고 불릴 만큼 가장 인기 있는 꽃이다. 사람들은 이 꽃을 사서 마당에 심기도 하고, 화분에 심어서 테라스를 꾸미기도 한다. 상점에는 부활절 달걀과 병아리 모양의 장식품부터 부활절 디자인의 식기, 냅킨, 쿠션까지 다양하게 진열해서 손님을 기다린다. 온통 봄을 상징하는 노란색, 연두색 빛이다.
우리 집에도 부활절 관련 장식품을 꺼냈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두는 장식품은 매년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들어 오는 부활절 작품이다. 작은 아이가 만들어온 털실 병아리는 식탁 위에 놓았다.
"학교에서 어땠어?"
"재미있었어!"
"뭐가 재미있었어?"
"친구랑 같이 병아리 만들면서 이야기하고 논 거. 하루 종일 만들기하고 놀았어."
'학교 수업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놀이처럼 여겨질 수도 있구나.'
나는 아이의 말을 듣고 다시 노르웨이식 학부모 자세를 다잡는다. 책을 펴고 공부를 하는 것이 학교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노르웨이 학교는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공동체 의식을 배우는 곳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문화·예술적 경험을 통해 창의성과 사회적 기술*을 발전시키는 활동을 강조한다. *사회적 기술(social skills) : 단순히 타인과 잘 지내는 능력을 넘어서, 집단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협업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표현하는 능력
우리 아이들의 경우 유치원과 학교에서 부활절 관련 활동을 꾸준히 해 온 덕분에 노르웨이 문화를 이해하고, 이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는 한국인 부모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가 더 두드러지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부활절이 낯설었던 나와 남편도 아이들을 통해서 노르웨이에서 부활절 문화에 조금씩 적응하게 되었고 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도 더 느끼게 되으니 문화·예술 교육의 힘이 크다.
세상에는 지식을 가르치는 교과서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이 참 많다. 함께 하는 공간에 계절의 옷을 입히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는 시간도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활절 연휴에는 아이들이 만들어 온 봄맞이 작품을 보면서 봄기운을 즐겨보려고 한다. 봄기운을 즐기는 것도 배움의 일부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참고. 노르웨이는 루터교를 국교로 가진 종교 국가였다. 2012년에 헌법이 개정되고 2017년부터는 노르웨이 국교회(Kirken)가 정부로부터 분리되었다. 노르웨이는 기독교 전통에서 비롯된 휴일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만 공교육이나 명절 문화에서 종교색은 매우 적어졌다. 내 생각에 포스케와 같은 기독교 명절을 학교에서도 챙기는 이유는 아이들이 계절에 따라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과 연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