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아이들은 방학 때 뭐 해요?”
“그냥 쉬어요. 아이들도 학교 다니는 거 힘들잖아요. 방학이니까 쉬어야죠.”
방학은 다음 학기를 준비하거나 부족한 학업을 보충하는 기간이 아니었나? 노는 것이 방학이라면 어떻게 놀고 어떻게 쉬어야 할까?
노르웨이 여름 방학은 두 달이다. 아이들이 매일 다닐 수 있는 수학, 영어, 피아노, 태권도 학원 같은 것은 없다. 하루 종일 집에 두면 TV, 핸드폰, 태블릿 PC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그래서 자율적으로 공부를 조금 시켜보려 하면 돌고래처럼 소리를 지른다.
“방학인데 왜 공부를 해? 다른 애들은 다 노는데!”
“그러면 하루 종일 뭐 하려고!?”
방학 숙제도 없고, 무작정 잘 놀기만 했던 방학을 보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잘 놀게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 책장에서 이명석 작가의 『논다는 것』을 꺼내 들었다. 매년 여름, 아이들 방학을 앞둔 시기에 나를 다독여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놀고 쉬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삶에 이로운지를 다시 기억해 낸다.
밤늦은 시각, 딸아이의 친구 엄마에게서 반가운 문자가 왔다. 지역 봉사 센터에서 여름 캠프 신청자를 받고 있다는 문자였다. 후다닥 들어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아, 늦었나? 대기자네.’ 자리가 나면 연락을 줄 테니 연락을 잘 받으라는 메시지가 떴다. 다행히 일주일쯤 뒤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26주 차에 자리가 있는데 참여 가능한가요?”
“네! 그럼요. 그런데 저는 아이가 두 명이에요. 두 자리가 있나요?”
“네, 가능해요. 그런데 올해는 월~금이 아니고 목요일까지만 프로그램이 있어요. 10시까지 센터로 보내주세요. 4시에 마칩니다. 자세한 건 이메일을 확인하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서 흥이 났다. 월요일은 운동장에서 놀기, 화요일은 호수에 수영하러 가기, 수요일은 클라이밍 파크, 목요일은 놀이공원... 지역사회와 기업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무료 프로그램인데도 꽤 알차다. (다른 운동 클럽이나 미술관 등에서 열리는 여름 코스를 일주일 보내려면 한 명당 20-40만 원이 든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여름이 되면 히떼(Hytte)라 불리는 별장으로 가서 지낸다. 낮에는 바닷가나 호수, 숲 속 오두막에서 수영이나 낚시, 트레킹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히떼에서 보드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아도 되는 휴가를 보낸다. 요즘에는 디지털 세상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서 일부러 와이파이가 없는 히떼를 찾아가기도 한다.
여름 방학이 길고, 또 여러 나라가 붙어있는 유럽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해외여행을 가는 가족들도 많다. 긴 겨울을 견딘 북유럽 사람들인 만큼 뜨거운 햇볕을 찾아 주로 남쪽 나라로 여행을 간다. 그러나 해외여행을 다녀오더라도 휴가의 마무리는 가족 별장(히떼)에서 며칠을 쉬면서 보낸다. 그래야 진짜 쉬었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계절 여름. 어느 곳에 머물더라도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여름은 “일상에서 온전히 물러나는 시간”이다. 꼭 뭔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쉼과 자연과 가족으로 채워지는 시간. 매년 노르웨이 아이들은 이런 여름 방학을 보내면서 '휴식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즐겁게 만드는 놀이를 찾는다.
우리 가족의 이번 여름 방학 계획은 2주간 남쪽 유럽 나라 여행하기, 노르웨이에 돌아와서 1주일 캠핑하기로 정했다. 남은 날은 집에서 머물며 각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럼, 이거 해. 저거 해”가 아니라 “놀아도 돼.”,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거 없었어?”, “지루하면 뭐라도 하고 싶어질 거야.”라고 자주 말해 주려고 한다. 뭔가를 채워주려고 애쓰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서 놀이와 쉼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응원해 줄 생각이다.
한국어와 수학 숙제는 방학이라서 주 3회만하기로 했어요. “저녁밥은 안 먹어?”라고 물어보면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짜증낼 게 뻔해서 그냥 넘어갔어요. ㅋ 본인인 만족했으면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