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에도 말씀드렸듯이 이번 연재 브런치북은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아날로그 교육>이 주제입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수 능력이 될 사회정서 역량 5가지에 대한 에피소드를 번갈아 가면서 다룰 예정입니다. 노르웨이에서 제가 경험했던 일들을 주로 쓸 예정이기 때문에 한국 가정과 학교, 사회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는 다양한 의견을 나눠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부모, 교사 그리고 교육 분야에 종사하시거나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이번 주에는 '사회적 인식'과 '관계 기술', 이 두 가지 역량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제가 쓰고 있는 교육신문(디지털 에듀)에 기고문으로 적은 글입니다. 그래서 모두 보실 수 있도록 전문을 공개하려고 해요. 제 브런치를 구독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연재 브런치북은 매주 월요일마다 발행됩니다.
노르웨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파티 문화가 있다. 얼마 전에는 핼러윈 파티를 했고. 곧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예정되어 있다. 여름 방학 전에는 학기말 쫑파티를 한다. 학부모가 주최하기는 하지만 매년 이 세 가지 파티는 학교의 협조를 받는다. 그래서 선생님이 직접 학급 아이들에게 초대장을 나눠주신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큰 파티들 사이사이 비공식적으로 학급 친구들의 생일 파티가 있다.
방과 후에 열리는 생일 파티는 선생님이 따로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모임이긴 하다. 하지만 노르웨이 아이들의 생일 파티는 ‘개인 행사’가 아니라 ‘학급 행사’에 가깝다. 왜냐하면 생일 파티에 초대를 할 때 “반 친구 전체”, 혹은 여자 아이라면 “여자 아이 전원”, 남자아이라면 “남자아이 전원”을 초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학기 초 학부모 모임을 할 때마다 강조한다.
“생일 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할 때는 반 전체 또는 한 성별 전체를 초대해야 합니다.”
다른 학교를 다니는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아도 적어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몇몇 ‘절친’만 골라서 초대해서는 안 되고 최소한 같은 반의 같은 성별을 가진 친구 전체를 초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이런 문화가 생긴 걸까?
노르웨이 부모 교육 사이트에서 이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생일 초대장에는 힘이 있다”
초대장을 받은 아이는 친구들과 학급에 친밀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긍정적인 힘을 얻는다. 그러나 초대장을 받지 못할 경우, 아이는 친구들에게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때의 초대장은 학급 안에서 부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노르웨이는 공동체 문화와 사회성을 매우 강조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생일 초대도 교육의 일부로 보고 최소한의 포용 원칙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딸아이의 생일 파티를 준비할 때 있었던 일이다. 아무래도 혼자 생일 파티를 여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생일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열기로 했다. 생일 파티 준비를 위해 엄마 셋이 카페에 모였다. 한 엄마는 케이크를 담당하고, 한 엄마는 장소를 섭외하고, 나는 초대장을 만들기로 했다. 거기까지는 준비가 순조로웠다. 그런데 생일 파티에 초대하고 싶은 친한 친구 몇몇이 같은 반이 아닌 것이 문제였다. 각자 딸들을 설득해서 초대하지 말자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리 학급과 그 친구가 있는 학급의 여자 아이들을 모두 초대하기로 결정했다. 처음보다 예상 인원이 배로 많아졌고 파티 준비에 들어가는 예산도 배로 늘었다. 집에 돌아와 슬쩍 물었다.
"이제 5학년인데 친한 친구들만 살짝 불러서 생일파티를 하면 안 되는 거야?"
"엄마, 그건 안돼! 6학년 언니 중에 한 명이 반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몇 명이서만 생일 파티를 했는데 학교에 다 소문이 났어. 친하든 친하지 않든 생일 파티에는 친구들 모두 초대해야 돼. 그리고 우리는 다 친구야. 엄마도 알잖아!"
"그, 그렇지. 다 초대하긴 할 건데, 네 생각은 어떤가 하고 물어본 거야."
딸아이의 10살 생일 파티는 트램펄린 파크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두 학급의 여자 아이들 대부분이 참석했고, 참석한 아이들은 모두 직접 만든 생일 카드를 생일 선물로 가지고 왔다. 생일 파티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평소 자주 어울리지 않던 친구에게도 한 마디씩 건네면서 파티를 좋은 분위기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노르웨이 생일 파티 문화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적어도 어린 시절의 생일 파티는 ‘사적인 일’로 분류되어 교육의 눈길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 아이가 교실 한편에서 생일 초대장을 나누는 순간, 혹은 생일 파티에 대해서 말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적인 일이 아니다.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라는 말 자체가 학급 내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고, 학급의 분위기를 일렁이게 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한 아이의 자존감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공적 사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딸아이는 생일 초대장에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썼다. 그리고 빠진 친구가 없는지 스스로 몇 번씩 확인했다. 가늠해 보건대 친구 중 어느 한 명도 배제하지 않았고 모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독자님들께
노르웨이의 생일 파티 문화는 '우리는 모두 친구이며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포용의 기술을 가르칩니다. 이 문화의 핵심은 사회정서역량(SEL) 중에서도 '사회적 인식(Social Awareness)'과 '관계 기술(Relationship Skills)'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체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초대장을 받은 친구의 기쁨과, 받지 못한 친구의 소외감을 미리 헤아리는 것, 즉 타인의 감정과 관점을 공감하는 능력은 우리 아이들이 교실과 사회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은 우리 아이들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관계'와 '포용'의 가치를 어떻게 심어주고 계신가요? 또는 나 스스로 평소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관계'와 '포용'의 가치를 어떻게 실천하며 살고 계신지요. 어떤 다음 주에도 북유럽 교육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