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문화'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

by 김노하 Norway


3·1절을 조금 다르게 기억하고 싶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삼일절 기념식을 시청했다. 기념식 말미에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아이들, 학생들, 시민들의 목소리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장면이 나왔다. 한 문장 한 문장마다 겸손하면서도 강인한 민족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아이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다.


한국에 살 때보다 더 의미 있는 삼일절을 보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의 손에 든 태극기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삼일절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 적이 없다. 태극기도 어떤 해는 달았고, 어떤 해는 그냥 넘겼다.


부산에는 삼일절마다 기념 행사를 위해서 학교에 가야하는 남자 고등학교가 있었디. 디른 학교 친구들은 공휴일에 학교를 가야해서 어쩌냐며 놀리듯 말하곤 했었다.


공휴일 그 이상이 되기엔 나에겐 삼일절에 대한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3.1절이 되면, 노르웨이의 5월 17일을 떠올린다.


노르웨이는 400여 년간 이어진 덴마크와의 연합에서 벗어난 직후, 1814년 5월 17일에 헌법을 선포했다. 스웨덴과의 새로운 연합을 앞둔 혼란한 시기였지만 민족의 자결권을 헌법에 담았다.


이 헌법은 스웨덴 통치기에도 노르웨이의 자치권을 지켜낸 방패가 되었다. 우리 나라의 3·1 독립선언서가 외친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노르웨이에서 5월 17일은 엄숙한 행사 대신 아이들의 행진으로 온 나라의 거리가 채워진다. 공휴일이지만 유치원생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마을의 초등학교 또는 오슬로 궁전으로 모인다. 다들 전통 의상 ‘부나드’를 입고 국기를 흔들며 즐긴다.


반면 우리는 삼일절을 떠올리면 희생과 아픔이 먼저 생각난다. 추모의 분위기와 비장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조국을 위해 만세를 외친 후 갖은 고난을 치러야 했던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축제처럼 기쁘게 그날을 기억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삼일절을 이렇게 조금 다르게 기억하고 싶다.


슬픔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면서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이 함께 숨 쉬는 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널리 널리 자랑할 수 있는 날.



기억은 머리에 남지만, 문화는 몸에 남는다.


의무로 배우는 애국은 마음에서 흐려질 수 있지만, 행동하고 참여하면서 체화된 자부심은 세대를 건너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노르웨이에 살면서 5월 17일 행사를 여러 번 경험했다. 아이들 때문에 행사에 따라나선 나도 "노르웨이는 최고의 나라야, 나는 노르웨이를 사랑해!"라고 외치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유모차를 탄 아기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한 뜻으로 국기를 흔드는 것을 보면서 내심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들은 이렇게 나라를 위한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매년 가지는 구나.‘


노르웨이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이 경험을 반복하면서, 나라의 중요한 문화 행사에 참여하는 국민이 되었고 노르웨이에 대한 애국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도 상상을 해 보았다.

“대한민국 만세!”라는 외침이 기념식장 안에서만 울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그런 문화의 장이 매년 펼쳐진다면 어떨까? 그러면 역사의 기억은 문화가 되고, 나의 삶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마침 올해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이라고 한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원하는 나라는 군사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라, 문화의 힘이 강한 나라다.”


문화의 힘. 이 말이 깊게 마음에 와닿는다.


한국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면 누구보다 강하게 뭉친다. 이제는 위기가 아니라 평온함 속에서도 '문화의 힘'을 뿜어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관련이 된 것이면 더 좋을 것 같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세계 어느 나라에 살더라도 자신이 가진 뿌리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노르웨이 우리집 거실에서 흔들어 보는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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