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노하 Norway Aug 08. 2023

N고딩들의 고충을 들어볼래?

얘들아, 안녕? 


방학 잘 보내고 있니? 한국에서 더위와 싸우고 있을 너희에게 노르웨이의 날씨를 불평하는 일은 하지 않을게.

그런데 노르웨이에 살면서 하천 범람 주의 경보를 이렇게 자주 받아보긴 처음이야. 우리 몸에 난 작은 상처를 잘 치료하지 않으면 점점 상처가 심각해지잖아. 인간이 지구에 일으킨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우리가 제어하기 힘든 문제 상황에 봉착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돼. 선생님은 너희들과 선생님 아이들이 살아갈 이 땅의 건강을 위해서 음식을 아껴먹고 분리수거를 잘하고, 최대한 걸어 다니며 지내고 있어. 

안부 인사가 좀 거창하게 시작되었네. 오늘은 노르웨이 고3 이야기를 해주려고 해. (너희는 K고3이니까 노르웨이는 N고3이지?) N고3들은 졸업 후 자유를 만끽하다가 얼마 전 대학 입시 결과를 받았어. 노르웨이 새 학기는 8월 중순에 시작해서 다음 해 6월 중순에 끝나거든. 


노르웨이 대학 입시에 반영되는 마지막 내신 시험은 서술 시험이랑 구술시험으로 나뉘어. 한국은 하루에 모든 과목 시험이 끝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좀 달라. 일반적으로는 학기 중에 에세이를 내고 발표를 한 걸로 성적이 나오는데, 고3이 되면 추가로 필수 과목과 선택된 과목에 대한 좀 더 공식적인 시험을 치러야 해. 대학 시험 기간이랑 비슷하게 과목마다 시험 시간이 공지되는 방식이야.

노르웨이의 구술시험은 본교 교과 선생님 외에 다른 학교에서 선생님 한 분이 더 오셔서 평가를 해.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지. 30분 동안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인데, 그동안 배운 모든 것을 최대한 잘 설명해야 해. 선생님이 어떤 질문을 하실지는 모르지만 그 질문은 교육 과정 내에서 배운 것들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야. 

1. 그동안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2.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며 말하는 능력이 있어야

구술시험에서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어. 다행인 건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여서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거지.
 작년에 시험 제도가 바뀌어서 수학이랑 과학은 실습형 구술시험을 쳐야 해. 직접 문제 해결을 하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는데 필요하면 실험도 해야 하는 거지.


시험 과목을
학생이 선택할 수 없다고?!


정말 신기한 건, 구술시험은 딱! 1과목만 치면 되는데, 내가 어떤 과목을 치게 될지는 시험 이틀 전에 알 수 있어.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모든 주요 과목의 구술시험을 대비하고 있다가 시험 과목을 알게 되면 바로 그 과목에 집중해서 발표와 질의 응답할 준비를 후다닥 해야 해. 수학을 못해도 수학 과목에 당첨되면 수학을 칠 수밖에 없어. 모든 과목에 대한 공부를 그동안 열심히 했다는 전제 하에 한 과목을 대표로 친다고 생각하면 좀 이해가 되려나? 어쨌든 시험칠 과목은 교육청 컴퓨터가 결정을 하는 거니까 운에 맡길 수밖에.


아까 서술 시험도 있다고 했지? 서술 시험은 보통 3-4시간 정도 걸리고 대학에 진학하면 써야 하는 소논문 형식으로 글을 써야 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나에게 필요한 가치> 쓰기 수행평가 했던 거 기억하니? 처음-중간-끝으로 나누고 중간을 세 부분으로 쓰고... 그 글을 좀 더 길게 쓰면 되는 거야.  


너무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지금부터가 중요해!


N고3들의 졸업 파티는
관광버스를 타고~


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N고3들은 13년이라는 긴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는 축제를 즐겨. 그 축제를 RUSS라고 하거든. 보통 큰 관광버스를 빌려서 버스를 안팎을 꾸미고 밤새 그 버스를 타고 놀러 다녀. 아주 큰 스피커를 설치해서 음악을 틀고, 춤추고 놀아. (구체적인 건 생략) 5월이면 RUSS 버스가 동네 곳곳을 누비며 다니는데 고3들이 그렇게 졸업 기념 파티를 길고 거하게 즐기는 게 정말 신기하더라. 그것도 대학 입시에 직결되는 시험을 앞두고 말이야. 학생들의 안전과 비용 절감을 위해서 RUSS 버스를 운전기사를 자원한 건 바로 부모들인데 어떤 부모들은 운전을 해주기 위해서 일부러 버스 운전면허를 따기도 한대.



선생님이 노르웨이 관련 책을 쓸 때 오슬로 대학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거든. RUSS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걱정은 되지만 또 친구들과의 마지막 파티기 때문에 완전히 모른 척할 수도 없대. 그래서 축제도 즐기면서 공부도 해야 하는 상황이 참 스트레스였다고 하더라. 


K고 3이 있는 집은 발소리도 적게 내고 다닌다는데 참 다른 상황이다. 그렇지?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주변 환경 속에 있다면, 그 배려에 감사하렴. (기승전 - 감사와 현실 받아들이기). 

공부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

학창 시절이기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거고 졸업 후에는 그 똑같은 환경이 더 이상은 주어지지 않아.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받는 K고3을 열공하는 N고3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지도 몰라.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성장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단다. 선생님은 지금 책도 더 읽고 싶고, 글도 더 쓰고 싶은데, 가족들의 식사 준비를 하러 부엌에 가야만 해. 노르웨이에선 배달되는 음식도 거의 없고, 한국 음식 재료도 구하기 힘들고, 한국 음식을 해 먹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빵만 먹으면서 살기엔 선생님 가족의 입맛은 너무 한국 스타일이거든. 배달앱이 있고, 길을 가다가 김밥 한 줄과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는 너희가 정말 부럽다. 


또 편지 쓸게. 

 - 노르웨이에서 선생님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