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얘들아!
잘 지내고 있니?
선생님은 여름휴가를 산속 별장에서 보내고 돌아온 이후로 계속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데 공허함이 드는 거야. 찬찬히 앉아서 생각을 해보니 아마도 선생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잃어서 그런 것 같아. 아이들은 방학이고 남편도 휴가라 3주째 가족 모두가 함께 있어. 개인 자유 시간이 없는 단체 숙소 생활을 24시간 하는 느낌이야.
평소에는 오전에 혼자 집에 있으면서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며 보냈는데, 그런 보통의 일상을 보내지 못하니 늘 하던 일을 하지 못하고 잠들 때가 많아. 물론 -이건 꼭 말해야 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지 않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너희도 집에 혼자 있을 때 왠지 자유롭고 편안하고 그런 걸 느끼잖아. 그렇지? 아무리 가족이지만 돌아가면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중요해.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하다.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해서 오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선생님은 요즘 과자를 탐닉하고 있어. 마트에 갈 때마다 과자 코너를 두리번거려. 한국 과자 코너에 비해서 소박하지만 그래도 하나를 신중하게 고르고 집에 들고 오는 행복감을 누려.
노르웨이 과자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자면 아래와 같아.
1. 일단 비싸다.
2. 종류가 별로 없다.
3. 비싸고 종류도 별로 없는데 맛도 없다.
노르웨이 마트에 가면 감자칩 하나 가격이 제일 싼 건 25 크로네 정도이고, 비싼 건 50 크로네가 넘거든. 처음에 선생님이 노르웨이에 왔을 때는 한국이랑 노르웨이의 환율 차이가 많이 나서 5천 원에서 1만 원 정도 줘야 봉지 과자를 먹을 수 있었어. 그래서 아예 과자를 사 먹을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
한국도 과자가 꽤 비싸지? 과자 봉지 안에 든 내용물 중에서 절반이 질소라는 말도 있잖아.
"나는 과자가 아니라 질소를 샀다."
여하튼 지금 환율로는 3천 원에서 6천 원 사이에서 봉지 과자 하나를 살 수 있어서 과자를 사 먹는데 부담감이 조금 줄어들었어. 문제는 사 먹을 만한 과자가 별로 없다는 거야. 대부분은 감자칩이고, 그 외 버터 쿠키 종류와 젤리, 초콜릿이 전부라고 할 수 있지.
'초코파이나 카스텔라, 마가렛트, 빅파이 같이 조금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작은 사이즈 포장으로 여러 가지 과자를 먹어 볼 수 있는 과자 세트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한국 과자는 그냥 한마디로 '훨씬' 맛있어! 특히 적당하면서도 다양한 '단짠의 맛'을 만들어 내는 한국 과자의 퀄리티는 별도장 다섯 개를 쾅쾅쾅 쾅쾅! 찍어 주고 싶어. 선생님 딸이 말하기를 노르웨이 과자는 밀가루 맛이 많이 난대. 그리고 너무 짜대. 다양성이 부족하더라도 맛만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한국인이니까
한국 과자가 맛있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맛있는 것이 많아서'야. 노르웨이 젊은 친구들도 한국 라면 그리고 한국 과자를 좋아해. 노르웨이에서 한국 과자를 사려면 아시안 마트를 가야 하는데 사실 종류가 몇 개 없어. 양파링과 새우깡정도. 오슬로에 한인 레스토랑에서 오픈한 한인 마트에 가면 좀 더 다양한 과자들이 있는데 한인들뿐만 아니라 외국 학생들도 많이 사 먹는 것 같아. (거긴 '새콤달콤'도 팔더라!)
한국에서 과자만 한 박스를 배송받아서 노르웨이 친구들에게 나눠주면 그야말로 인싸가 될 수 있어. 한국의 맛을 일단 알게 되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선생님은 생각해. 너무 한국 자랑을 했나?
음. 그래도 너희가 언젠가 노르웨이에 여행을 오게 되면 추천해 주고 싶은 과자가 몇 가지 있긴 해. 스낵 과자 중에 하나는 솔란드칩! 노르웨이 대표 감자칩 브랜드야. 칩의 두께가 꽤 두꺼워서 처음엔 좀 낯선 식감인데 밀가루 맛이 안 나고 진짜 감자칩 맛이 나는 과자야.
최근에 솔란드칩 회사에서 한국 치킨 BBQ맛 감자칩을 출시했어.
Ekstra Tykke Sørlandschips Korean BBQ, vårt hittil tykkeste potetgull med herlig smak av koreansk bbq. 2,0 mm tykke potetchips, en ny type sabla sprø chips som passer perfekt som tilbehør til grillmat eller bare som snacks. Sørlandschips er den originale chipsprodusenten på Sørlandet, kjent for ekstra sprø og smakfull chips. Vår potetchips stekes i peanøttolje med skallet på, i små porsjoner og på lav varme.
맛있는 한국식 바비큐 풍미를 지닌 지금까지 가장 두꺼운 감자칩인 솔란드칩 코리안 바비큐. 2.0mm 두께의 바삭한 감자칩으로 바비큐 음식에 곁들이거나 간식으로 즐기기에 완벽한 새로운 타입의 바삭한 칩입니다. 노르웨이 솔란드칩은 남부의 오리지널 칩 생산업체로, 바삭하고 풍미가 뛰어난 칩으로 유명합니다. 당사의 감자칩은 껍질을 벗긴 채 땅콩기름에 소량씩 약한 불로 튀겨냅니다.
그런데 과자 봉지에 한국어로 '남부칩'이라고 적혀있는 거야.
남부칩?!
처음엔 남부칩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선생님 딸은 금세 "엄마, 그거 솔란드칩이란 뜻이잖아요." 그러더라고. 솔란드칩 회사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서 '남부칩'이라고 적었나 봐. 고유 명사인 브랜드명을 번역해 버리는 센스라니...
남부칩의 '한국 치킨 맛'을 설명하자면 고추장의 단맛이 살짝 나다가 그냥 짠맛이 나. 사실 이 과자는 프링글스처럼 부드럽지 않고 딱딱하고 두꺼운 감자칩야. 그래서 맛을 느낄 수 있는 건 찰나이고 '와그작와그작' 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감자칩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 결국 한국의 치킨 BBQ 맛이 충분히 재현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당장은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선택될 만한 과자야. (스트레스는 풀어야 하니까!)
아묻따 '한국의 맛'
아마도 프로젝트 성 상품인 것 같아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계속 사 먹어 볼 생각이야. 너희들도 일상의 결핍을 대신 채워줄 수 있는 '어떤 선택'을 하면서 지내고 있니? 과자는 아니더라도 그 선택이 건전하길 바란다.
이번주도 수고해라.
- '혼자만의 시간', '평범한 일상'을 잃어서 과자 한 봉지로 소확행을 누리며 지내고 있는 선생님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