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얘들아!!
오늘은 더운 여름 책상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너희에게 편지를 쓰려고 해. 선생님은 그동안 공부가 아니어도 좋으니 너의 인생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그것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편지를 썼었어. (알고 있었니?)
사실 반장이 톡을 보냈더라. 지난번엔 부반장이 보낸 톡에 답장을 했었는데, 이번엔 반장에게서 톡이 왔어. K 고3인 너희들의 복잡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읽으며 무슨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
선생님이 줄 수 있는 건 해답이 아니란 걸 너희는 이미 알고 있겠지. 하지만 진심으로 너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사실 지난주 편지에서 이야기했듯이 선생님은 노르웨이 산속의 별장 '히떼'에 있었어.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는 길을 걸었단다.
처음엔 호수를 찾아갔어. 분명 겨울에 갔을 때는 눈 덮힌 호수 주변으로 길이 있어서 노르딕 스키를 탔던 곳이거든. 그런데 눈이 다 녹은 여름에 갔더니 길이 보이지 않더라. 저 넘어 분명 호수가 있는데 호수 주변으로 풀들이 무성히 자라서 호수 근처로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목적지를 바꿨어.
폭포가 있다기에 근처 농장에 차를 세워 두고 무작정 걸었단다. 어른 걸음이 아니라 아이들의 발걸음에 맞추느라 가다 서다를 반복했어. 양들이 길 중간에 앉아 있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어. 들꽃들을 구경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에 손도 담갔어. 우리가 걸으려고 했던 호수는 저 멀리 보이더라. 구름이 밀려오면 좀 진하고 어두운 빛을 내다가 구름이 걷히면 세상에서 가장 투명할 것 같은 물빛이 반짝거렸어.
선생님 가족은 거의 두 시간을 걸어 폭포가 있는 곳에 도착했어. 그런데 폭포 바로 앞까지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거야. 아뿔싸! 정말 폭포를 보고 싶어서 걸었거든!
도대체 길들이 어디로 숨은 걸까?
노르웨이는 아주 유명 관광지가 아닌 이상 인공적인 길을 만들어 놓지 않고, 표지판도 없는 그런 곳이 많아. 겨울 시즌에 많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여름의 노르웨이 길은 겨울과 다르게 목적지까지 쉽사리 사람들을 들여보내 주지 않는 것 같아. 그래도 아이들은 차디찬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즐겁게 놀다가 왔어.
선생님이 다녀온 여름의 노르웨이 길이 어쩌면 지금 하염없이 공부하는 너희의 지금 상황과 비슷할 것 같아.
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가고 싶은 길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고.
나름 길은 찾았지만 힘들고 고단하고 이 길이 맞나 싶고.
그런데 얘들아, 지금은 그냥 걸어야 해. 생각할 겨를이 없단다. 입시 제도에 대한 불만, 시간이 얼마나 남았고 부족하고를 따질 수도 없어. 그냥 걸어야 해. 이왕이면 최적의 신발과 복장으로 걸으면 좋겠지만 조건을 따지지 말고 지금은 걸어.
수십 년이 지났지만 선생님이 겪었던 입시와 별반 달라진 것 없는 길을 걷는 너희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지금 이것뿐이야. (미안하다.) 일단은 지금처럼 계속 해. 수능을 치는 날까지 실기를 치는 날까지. 집중해.
그 길에서 중요한 건 정말로 '너의 마음'이야. 잘하고 있는 너를 스스로 칭찬하고 응원하는 마음. 받아들이고 꿋꿋하게 해 나가는 마음.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무한히 불행하고, 작은 것이라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감사하다, 생각하면 힘든 오늘도 견딜 수 있어. 선생님은 힘든 순간을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견뎌온 것 같아.
편지가 길어지긴 하는데, <거인의 힘 무한능력>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짧게 해 줄게. 텍사스 석유 재벌 벙커 헌트라는 사람이 성공의 비결을 알려달라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대.
첫째,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라.
둘째, 그것을 위해서 대가를 치를 용기가 있는지 결정한 다음에 그 대가를 치르라.
지금은 너희가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대가를 치러야 하는 기간이야. 누구도 아닌 너의 인생을 위한 거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고?
힘들다면 정말 잘하고 있는 거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만 하는 사람들은 '말 뿐인 다수'에 속하고, 그것을 얻는데 필요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는 사람들,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행동하는 소수'에 속한다고 해. 너는 지금 행동하니까 힘든 거야.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서 힘든 거야. 너는 '행동하는 소수'야.
나중에 반드시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을 거야. 결과에 대한 실패? 걱정? 두려움? 지금은 생각할 겨를이 없어. 그냥 해야 해. 그리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건 실패가 아니야. 지금 겪는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이야.
대가 代價
일정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하는
노력이나 희생
원하는 것을 결정했다면 '행동하는 소수'로 남은 기간 집중하렴.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고민된다면 일단을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결과를 받고 더 생각하렴. 선생님은 그랬어. 주어진 시간에 결정한 일이 있다면 경주마처럼 주변을 보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달렸어.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이자는 마음으로.
네 인생의 중심은 너야. 너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나아갈 힘이 나오는 것도 네 안에서 찾아야 해. 응원한다.
- 노르웨이에서 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