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metaverse 시대의 특징적인 상상력이 글쓰기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계와 가상계의 경계 지점에서 머뭇거리는 예비 시인들의 목소리가 지치지 않고 끝없이 들려온다. 이처럼 중심을 포착하기 어려운 시대에 ‘시 쓰기/읽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현실계에 구멍을 뚫지 않고는 가상계 혹은 상징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여기서 구멍은 통로이며, 구멍 뚫기는 시인의 몫이다. 더불어 한 편의 시가 하나의 소통의 단위가 되기 위해서는 화살촉과 같은 무게중심을 가지고 대상을 향해 꽂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무기명으로 본심에 전송된 원고는 16명의 투고작이었다. 먼저 이를 출력하여 두 사람이 각자의 관점에 따라 읽었고, 다음에는 오프라인으로 모여 당선작을 결정하였다. 대상작은 8명, 4명, 2명의 순서로 좁혀져 갔다. 전체적인 면에서 시적 표현의 양상이나 제재의 다양성은 인정할 수 있으나, 시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요건인 서정적 자아의 부재, 주제 의식의 빈곤, 시어의 함축성보다는 진술적 설명에 치우친 점 등이 우선 지적되었다. 최종에서 논의된 작품은 「크레인의 목적」 외 7편, 「손, 라이프 나이프」 외 8편, 「문」 외 4편, 「윤곽」 외 4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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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남은 작품은 「문」(「락다운」)과 「윤곽」(「사과를 먹는 사과씨들」)이었다. 「문」에서는 “눈송이마다 저녁이 붙어 있다.”와 같은 표현이나, “마당은 자꾸 넓어져서 너는 저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나는 오두막에 들어앉아 폭삭 늙을 때까지 시를 쓰고, 지나가는 새소리를 모으기도 했다.”와 같은 절묘한 서정성의 실현이 시의 정감을 풍부하게 한다. 동시에 내면의 영역 표시를 ‘문’으로 상징한 것은 평이하지만, 역설적으로 ‘문이 없었’ 던 것에 닿아 있다. 평이한 진술 속에서 의미를 형상화해내는 솜씨가 돋보였다. 「윤곽」은 앞의 시와 같이 ‘나/너(당신)’의 관계성 속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결속의 상징은 “손”이자, 손이라는 윤곽을 가진 “열쇠”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당신”의 관계성을 깨고 타인의 “손”이 개입되는바, “녹은 자리가 예뻐서/ 당신이 또 손을 어루만지면// 너무 헐거워”와 같이, 너(당신)조차도 타자화되면서 꽉 쥔 열쇠의 윤곽은 점차 “헐거워”진다. “내 주머니에서 손이 사라지고// 주머니에 타인의 열쇠가 가득해졌다”라고 했을 때, 선택 불능의 홈만 깊게 파인다. 전체적으로 너(당신)는 마음으로 지어진 가상의 너이자 허구적 현실이다.
두 작품 모두 장단점이 있고, 비중이 엇비슷하다. 「문」에서는 ‘나/너’의 단순한 도식이, 「윤곽」에서는 일부 어눌한 표현이 걸린다. 논의 끝에 「윤곽」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시의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시상의 안정적인 전개와 동봉한 작품에서 보이는 상징성의 구축 등에서 믿음이 간 것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아깝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분발을 부탁드리며 다음 해를 기약하기로 한다.
- 심사위원 : 곽재구 · 염창권(글)
운이 한 스푼 모자랐다. 완벽한 시는 얼마나 징그러운가. 고로 힘을 빼고 쓰자. 삼재도 끝났는데. 자가 위로 ㅎ
엄마, 고마워요. 누구보다 나 본심서 떨어졌다고 울어준 내 짝꿍, 박 성은 쌍둥이 언니, 사랑해.
혼자 떨어진 소감 지껄이기라도.
본심까지 올라간 시 두 개 중 하나를 올려본다.
문
박 상은
내 마음에 네가 담겼을 때 나는 어디로 갔을까
내 마음에서 넘친 너의 마음 속엔 나가는 문 밖엔 없었을까
일기를 쓴다. 쓰지 않는 연필을 깎는다. 세상의 모든 문은 네모난데 작은 새들의 눈과 태양, 씨앗, 너에 대한 소문을 듣는 내 귀는 동그랗다. 문 안에 꽃다발처럼 접혀 있는 기억들이 네모나게 날아다닌다. 곧 눈이 오리라. 모서리가 닳아서 모든 문 안으로 내리는 눈송이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눈송이마다 저녁이 붙어있다. 나는 밥을 하고 너는 마당을 쓴다. 마당은 자꾸 넓어져서 너는 저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그러다가 돌아오지 않은 날이 있었다. 나는 오두막에 들어앉아 폭삭 늙을 때까지 시를 쓰고, 지나가는 새소리를 모으기도 했다. 눈송이 마다 굴뚝에서 연기를 피운다. 마당에 나가 눈을 쓸었다. 마당은 자꾸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