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야. 세계적인 모델이 꿈이면 밥 좀 잘 먹으렴.
패션은 20년 주기로 돈다는데 나의 새로배움병(이하 뉴런병 New-learn)은 2년 주기로 돈다. 그간 뉴런병의 행적을 나열하려면 끝이 없으나 오늘은 패션디자인 뉴런병에 대해서 고해 보기로 한다.
나는 깡말라서 몸은 작으나 골조가 컸다. 골조가 크다고 하여 위로도 클 거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 부연하자면 나는 대한민국 여성 평균키이다. 나의 골조는 어깨와 골반을 의미한다. 이상은 과거형이며 현재는 두 번의 출산과, 나의 위는 어디까지 위대한가 알아보는 냠냠 뉴런병이 찾아와서 그냥 몸도 골조도 둘 다 크다.
2차 성징이 끝나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골반과 허리 사이즈가 15인치 차이가 났으니 날이 갈수록 입을 수 있는 옷이 줄어들었다. 기성복을 맘대로 입을 수 없는 신체의 치명적인 결함?으로 인해 그 무렵부터 원피스를 선호하게 되었으나 사실 난 바지를 더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도 교복점에 가서 일단 골반에서 들어가는지 확인 후 구매해서 허리를 왕창 줄였다. 이후로도 옷을 구매 후 수선 집에 가면 가끔씩 수선이 불가능한 수치라며 수선 집에서 거부당하기도 하고, 이렇게 줄여버리면 옷태가 나오지 않는다며 맞춤제작을 권유받은 적도 종종 있었다.
그리하여 고2 때 나의 뉴런병이 새로 찾아왔으니 그것은 바로 패션디자인이다. 가정용 미싱을 구입해서 옷 만들기에 돌입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그냥저냥 용감했다. 처음에는 입던 옷을 일일이 분해해서 도화지에 대고 그려서 바느질을 시작한다.
나의 패션디자인 실력은 나날이 수직 상승하여 원피스를 투피스로 만들어 입고, 그 당시 유행했던 청바지로 가방 만들기 등 온갖 옷들이 나의 손을 거쳐 간다. 사실 만들어진 옷이 내 몸에 걸쳐질 때보다 쓰레기통으로 골인될 때가 더 많았다. 그렇게 나의 솜씨는 일취월장하였고 나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장래희망에 ‘패션디자이너’라고 당당하게 써내기까지에 이른다.
누누이 말하지만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 더 재미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나는 덜 재미있어도 되니 계획대로 되면 좋겠으나, 아무래도 나의 인생은 재미를 더 추구한다는 것을 매 순간 상기시켜 줘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나의 패션디자이너의 꿈은 대학원서 접수 당일에 보기 좋게 바뀌고 만다. 당시 귀가 심히 얇았던 나는 앞으로의 대세는 2,000년 이후를 기점으로 ‘사회복지’가 열풍이라는 말에 홀린 듯이 사회복지과를 지원한다. 그리고 사회복지과 졸업 후 현재까지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 끝!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잠깐만요! 패션은 20년 주기로 돈다고 서두에서 말했던 것을 기억하시려나요? 그리고 나의 뉴런병은 몇 년주기? 그렇다. 2년 주기다. 하지만 패션의 주기와 나의 뉴런병의 가장 큰 차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패션의 주기는 비슷한 유행이 반복되나, 나의 뉴런병은 한번 해본 것은 조금만 비슷해도 나의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뉴런병 공식을 깨뜨린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패션디자인이다.
비엔날레! 패션의 주기인 20년! 한류패션 열풍에 발맞춰 나에게 다시 패션디자인 뉴런병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여전히 용감했다. 가장 가까운 디자인학원을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찾아가서 냅다 1년 수강을 등록한다. 그리고 미싱과 물아일체가 되어 패턴을 그리고 또 그리며 옷을 미친 듯이 찍어낸다.
나의 목표는 1년 안에 패션디자인 관련 자격증을 따는 것과 리아, 리오의 옷을 취학 전까지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입히는 것이었다.
목표달성을 마친 후 나 홀로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온갖 옷을 만들어서 리아와 리오에게 입히며 자기 만족감이 하늘을 찌르던 그 어느 날 아침......
“린아. 나 몸을 못 움직이겠어. 왼팔이 안 올라가고, 목이 안 돌아가.”
나의 배우자는 나를 바닥에서 가뿐하지 않게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낑낑대며 떠서 응급실로 직행한다.
“목뼈가 일자로 곧추섰어요. 원래 경추뼈가 7개인데 환자분은 경추뼈가 8개네요. 사는 데는 크게 지장 없는데 목에 무리가 가는 자세는 주의하셔야 돼요.”
살면서 목이 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구조적으로 진짜 목이 긴 것이었던 것이다. 목이 길어서 슬픈 그녀의 꿈은 각종 진통제, 이완제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레드카펫을 밟는 리오를 떠올리며 꿈꿨던 그녀의 패션디자이너 꿈은 장롱 속으로 자격증과 함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슬픈 후문이다.
P.S : 20년 후 2040년쯤에 뉴런병이 재발하여 (브랜드명:더한/The HAN) 노쌤의 한복 브랜드가 출시될 수도 있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