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살아줘서 고마워.

소설 기초 글쓰기 훈련 수업 과제 : 엽편소설 쓰기

by 노래하는쌤

태인은 작년 여름에 할머니집 정리를 하러 내려갔을 때 씻김굿 하는 무당과 눈이 마주친다. 그 뒤로 태인은 계속 반복해서 똑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 아이가 꿈속에서 태인이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다른 사람 이름을 부르며 같은 말을 했다.


“살아줘서 고마워. 나 잊지 마. 해인아 사랑해.”


꿈에서 깨면 태인은 항상 울고 있었다.




‘짤랑 짤랑 짤랑 짤랑 짤짤짤짤랑’


무당의 무당방울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짤랑짤랑 들려온다. 태인은 홀린 듯이 방울소리를 따라간다. 마을의 당산나무 아래서 씻김굿을 한다고 동네 어른들이 모두 모여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북소리와 함께 무당방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틈 사이로 무당을 바라본다. 그 순간 무당방울 소리가 멈춘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미련두지 말고 당장 내려가!”


무당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태인을 노려본다. 모두의 시선이 태인을 향한다.


“향님아! 여기 소금 좀 가져와라! 어서! 헉 허억 컥.”


무당이 눈이 뒤집혀 흰자위만 보이더니 이내 뒤로 넘어간다. 태인은 놀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정신없이 할머니 집으로 달려온다.


할머니집에서 엄마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짐을 정리하고 있다. 할머니 환갑을 맞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던 아빠가 항공기 추락으로 인해 할머니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태인은 두 분의 장례를 마치고 엄마를 따라서 아빠의 고향에 잠깐 내려왔다.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할머니의 집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할머니 환갑여행을 처음 계획했을 때는 엄마와 태인도 같이 가기로 한 일정이었다. 태인의 갑작스러운 자살시도로 아빠는 이번 여행을 취소하자고 했지만 엄마는 할머니에게 태인의 일은 전달하지 말고 둘이서라도 다녀오라고 했다.


사실 태인의 자살 시도는 하루아침에 결정한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태인은 2년 전부터 학교에서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태인의 눈을 찡긋하는 틱장애를 가볍게 놀리더니 점점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졌다.


아빠가 해외출장이 잦고, 엄마가 대학병원에서 야간근무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태인의 집은 어느 순간부터 학교 일진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태인의 옷과 신발을 허락도 구하지 않고 맘대로 사용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자기들끼리 태인의 현관 비밀번호까지 공유하며 냉장고에서 음식을 스스럼없이 꺼내 먹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야! 김태인 간식 떨어졌다. 너네 엄마한테 간식 좀 채워 놓으라고 해. 라면도 떨어졌다.”


“진순이랑 짜파 추가요!”


“저 맵찔이. 신라면이랑 비빔면도 사달라고 말해라.”


엄마는 항상 친구도 없이 늘 혼자만 지내던 태인이가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고 간식도 사달라고 한다며 신이 나서 간식을 잔뜩 사다 놓으셨다.


“태인아.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말을 안 했어. 엄마가 미안해. 할머니집 정리하고, 우리 집도 정리하고 우리 서울 가서 살자.”


“엄마. 미안해요.”


“네가 왜 미안해. 태인아. 네가 다니는 한의원 순이이모 알지? 이모가 서울로 가서 한의원 새로 개원한다고 해서 엄마 거기서 일하기로 했어.”


“……”


“그동안 병원에서 야간근무한다고 엄마가 태인이한테 신경을 너무 못 썼어. 미안해.”


학교는 엄마와 상의 후 자퇴신청서를 냈다. 할머니집 정리가 모두 끝났다. 태인의 집이 예상했던 날짜보다 더 빨리 팔려서 다음 주면 서울로 가게 되었다. 태인은 서울에 가기 전 예전에 아빠와 함께 종종 갔었던 오락실로 발걸음을 향한다.


오락실 입구에는 동전노래방 기계를 들여놨다는 전단지가 붙어있다. 태인은 또 한 번 홀린 듯이 오락실 안으로 들어간다. 아직 학교가 끝날 시간이 아닐 텐데 노래방 옆 칸으로 한 여학생이 들어온다.


태인은 무슨 노래라도 불러야 할 것 같아서 노래방 책을 뒤적인다. 아빠가 할머니랑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듣고 있다던 송대관의 ‘네박자’가 눈에 띄어 연달아서 선곡한다. 네박자 소리 사이로 옆 칸의 노래가 들려온다.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 아빠의 18번 곡이다. 태인은 마이크를 내리고 옆 칸의 노래를 멍하니 듣다가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노래방 옆 칸의 여자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태인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노래방 옆 칸의 여자 아이는 꿈속에서 본 그 아이였다.


*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