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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역시 맥심

커피는 사랑을 싣고 흘러간다.

by 노래하는쌤

나의 할머니 만례씨는 어느 날부턴가 약주를 끊고 약주 대신 커피를 마셨다. 만례씨는 커피를 탈 때면 신문지로 덮어둔 애지중지 아끼는 커피잔을 찬장에서 조심스레 꺼내었다. 입술이 닿는 부위에 금테두리가 들어간 꽃무늬 커피잔에 늘 커피를 타셨다.


만례씨는 항상 꽃무늬 커피잔을 두 잔을 꺼내었다. 빨강, 주황, 노랑 세 가지 색의 꽃무늬 만례씨의 잔에는 맥심 2스푼, 프리마 2스푼, 설탕 2스푼을 넣어 커피를 탔다. 그리고 보라, 자주, 분홍 세 가지 색의 꽃무늬 내 잔에는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프리마 2스푼, 설탕 2스푼을 넣어 주셨다.


만례씨가 마시는 커피 향을 맡으며 프리마와 설탕을 넣어 준 달달하고 고소한 우유를 마시던 그 시간이 때때로 그립다. 만례씨가 마시던 커피 향을 맡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만례씨는 커피를 마실 때면 작은 소리로 찬송을 흥얼거리셨다. 그렇게 만례씨는 고단한 하루의 마지막을 커피와 함께 그리고 나와 함께 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만례씨의 얼굴은 한껏 더 그을려져 있었다. 지쳐 보이는 만례씨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팔각 교자상 위에 올려진 꽃무늬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매번 나는 만례씨에게 짠을 하자고 했다. 그런 것을 뭐 한다고 하려고 하냐면서도 만례씨는 커피잔을 들어 꼭 짠을 해주셨다.


어딘가에서 커피 향이 흘러오면 나는 그리움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만례씨와 마주 앉은 어릴 적 그 풍경이 떠오른다. 만례씨와 짠하고 마주친 커피잔 소리와 만례씨가 흥얼거리던 찬송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내 혀끝으로 만례씨가 타 주었던 달달하고 고소한 우유의 맛이 스쳐가는 것도 같다.


나는 카페인 최약체이다. 커피를 한두 모금만 마셔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밤늦게까지 잠을 청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은 커피 향이다. 배우자가 커피를 마실 때면 커피잔을 들어 올려 코끝으로 커피 향을 맡곤 한다.


향기로 기억하는 사람은 그 향기를 맡을 때마다 그 사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커피 향을 맡으면 만례씨와 함께 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가을 끝자락 만례씨와 함께 기울였던 커피잔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점심 식사 후 내 코끝으로 전해지는 커피 향에 잠시 눈을 감고 만례씨를 추억해 본다.


커피 향은 달달한 추억을 싣고 가을바람과 함께 기억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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