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례씨 미안해.
한동안 나는 당신의 글을 쓰는 일을 멈추었다.
당신을 쓰는 동안 그리움은 자주 짙어졌고, 당신의 무한한 사랑은 때때로 내 마음을 저리게 했다.
당신과의 문장을 하나씩 써내려 갈 때마다, 나의 글은 자꾸만 당신과의 시간 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고, 자연스럽게 나의 감정들 또한 그 시간 속에서 함께 공존했다.
그 무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 나를 누르고 있던 어떤 감정이 있었다. 나는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다만 글을 쓰지 못했고, 책을 펼치지 못했으며, 하루의 끝에서 이유 없이 지쳤다.
그런 나를 보던 해인이 어느 날 뜬금없이 늦은 밤 영화를 보자고 했다. 우리는 둘 다 줄거리를 알지 못했다. 불이 꺼지고, 화면이 켜지고, 나는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해인에게 그만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인 줄 알았던 드라마 속 장면은 내가 잊고 있던 감정을… 아니, 깊숙이 묻어 두었던 당신에 대한 마음을 조용히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나는 그 감정을 차마 죄책감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쌤아, 은제 올라고 그라냐? 은행이 허벌천나게 열려 븟당께. 무가서 모가지가 뽀사져블거씨야.”
“오메, 할머이. 즐때로 나무에 올라가덜 말어. 쩐번에도 떨어져 브러갔고 이마빡 꼬맸담서.”
“암시랑토 안 해븐디, 별시랍네이. 나 아적 성해야.”
“아따메, 내가 가 갖고 떨랑께. 쪼까만 지달리랑께.”
이십 년이 넘도록 만례씨 마당 뒤 은행나무 떨기와 지붕 쓸기는 늘 내 몫이었다. 일주일이면 간다던 나의 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잦아들 줄 알았던 둘째 기관지염은 조금도 좋아질 기미가 없었고,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변명일 뿐이지만 그때의 나는 당신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당신의 삶에서 나는 늘 첫 번째였는데, 나의 삶에서 당신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당신은 내가 오지 못하리라는 걸 짐작했고 나를 기다리지 못하고 은행나무에 올랐다. 그리고 그날은 당신이 두 다리로 온전히 걸을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나는 그날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깟 은행 안 먹으면 무슨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왜 말도 안 듣고 올라갔냐며 나는 화부터 냈다.
어릴 적 습관성 폐렴으로 내가 기침을 할 때마다, 당신이 정성껏 구워주던 은행 두 알과 따뜻한 은행차를 나는 알고 있었기에…
당신이 당신의 손주에게 주려고 그 나무에 올랐다는 것 또한 나는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몸서리치게 밀려오는 미안함을 끝내 인정하지 못하고 나는 당신에게 화를 냈다. 그런 나에게 당신은 이제 은행을 손질해서 챙겨주지 못하게 되었다며 되려 미안해했다.
이제야 알았다. 사실 알고 있었다.
당신의 글을 쓰면서 나를 누르던 감정의 이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당신에게 말하지 못한 미안함과, 알고도 외면했던 사랑이 서로 뒤엉켜서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었던 것을 말이다.
그때의 나는 당신에게 말했어야 했다. 내가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당신의 글을 쓸 때마다 왼쪽 가슴을 짓누르는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졌을까?
할머이, 미안해. 당신이 바라는 게 이런 사과가 아니라는 걸 아니까 이제는 이 감정을 저 멀리 흘려보낼게.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랑으로 행복하게 잘 살게. 만례씨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