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모두에게 전하는 꽃다발

by 노래하는쌤

나의 첫 번째 공황발작은 열여덟 살 때였다.

현실은 죽음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나를 덮쳤다. 숨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가슴이 조여 왔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나는 죽지 않았고, 어디가 크게 아픈 곳도 없었다. 그때는 그것이 공황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 녀석은 2~3년에 한 번씩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 나를 흔들어 놓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라졌다. 나는 그때마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꽁꽁 숨어버렸다. 사람들 앞에 서는 대신 책 속으로 파고들었다. 안전한 글자 뒤에 숨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다가도 나를 나약하다고, 유난스럽다고, 의지가 부족하다고 한없이 자책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녀석을 핑계 삼아 적당히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앞에 서야 하는 일이었다. 말하고, 나누고, 드러내야 하는 자리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공황을 방패처럼 세워 두고 그럴싸하게 나의 두려움과 게으름을 가려왔다. 도전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생기면 마음은 편해졌다. 대신 나의 마음 그릇은 조금씩 조금씩 작아졌다.


그래도 올해는 달랐다. 더는 숨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책을 출간하고, 강의를 다니고,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나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겠다고 계획했다. 이제 그 녀석 핑계는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또 다른 현실이 나를 가로막았다. 한 달 전 원치 않는 교통사고를 겪었다. 다행히 큰 외상은 없었지만, 나는 단기기억저하와 단기기억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혀 생긴 뇌진탕의 영향과, 사고의 충격으로 인한 심리적 요인일 수도 있다는 애매한 소견을 들었다. 보통 두 달에서 길게는 수개월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말속에서 나는 또 잠시 멈췄다. 기약 없는 회복 앞에서 나는 다시 멈춰도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어쩌면 또 한 번 게을러져도 이해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이유가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타협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현실과 적당히 손을 잡고 주저앉는 대신에, 나는 이 시간을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했다. 더 이상 나를 놓아버리지 않고 붙들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아마 혼자였다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문장을 읽고, 각자의 삶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함께이기에 나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낸다. 함께이기에 흔들려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함께 빛나는 졸업장을 받으리라는 기대를 품으며 미소 지어본다.


공황이라는 그 녀석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도망치지 않고 같이 가보자. 게으름이라는 또 다른 나를 밀어내지 말고, 살살 달래며 같이 가보자. 무수한 핑계들마저 떼어내지 못하겠다면, 그것마저 달고서라도 한 걸음씩 가보자. 나는 한때 이 모든 것을 완벽히 졸업해야만 살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공황도, 게으름도, 상처도 모두 사라져야 비로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졸업은 사라짐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멈추지 않으려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기억이 흐려져도, 두려움이 고개를 들어도 다시 한 줄을 쓴다.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 도망치지 않는 선택을 반복한다.


그대들과 함께 아름답게 졸업할 그날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