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졸업하러, 병산서원

by hong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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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마지막 주였다.

아직 겨울이 물러나지 않은 시간, 새벽 6시에 맞춰 집을 나섰다. 카메라 가방 안에는 디지털 라이카바디 하나.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안동의 아침은 유난히 고요하다.


병산서원으로 향하는 길은 늘 그렇듯 조용했다. 낙동강 물길을 끼고돌아 들어가면 병풍처럼 둘러선 병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산을 등지고 앉은 서원은,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시간이라 더욱 낮고 깊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닫힌 공간은 오히려 상상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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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빛이 내려앉은 만대루


첫 번째 사진에서 나는 낮은 담장과 돌축대를 따라 이어지는 경사 위로 만대루를 올려다본다. 뒤틀린 나뭇가지가 프레임을 감싸고, 굵은 기둥은 어둠과 빛을 동시에 머금는다. 흑백으로 담은 이유는 단순하다. 색을 지우면 시간의 감각이 또렷해진다.


만대루(晩對樓). 늦게 마주한다는 뜻을 지닌 이 누각은 이곳의 심장과도 같은 공간이다. 낙동강과 병산을 한눈에 품는 자리. 조선 중기의 학자 류성룡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서원에서, 이 누각은 강학과 사색이 오가던 무대였다.


병산서원은 본래 풍악서당에서 시작되어 1613년 사액을 받으며 서원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의 서원은 오늘날로 치면 대학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라, 학문과 인격, 공동체의 질서를 함께 배우던 공간이었다.


나는 문득 2월이라는 달을 떠올렸다.

졸업식의 계절.


그렇다면 이곳에도 졸업이 있었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서원은 학기제가 아니었다. 수시 입학, 수시 졸업. 스승 앞에서 정해진 경전을 완전히 이해했음을 증명하면 그 순간이 곧 졸업이었다고 한다. 시험 날짜도, 졸업식도 정해진 날이 아니었다. 학문이 다 채워졌을 때 비로소 떠나는 구조였다.


지금의 학기제는 일제강점기와 정부 수립 이후 자리 잡은 제도라 한다. 그 이전의 방식은 훨씬 선명하고 개인적이었다. 누구의 시간도 동일하게 흘러가지 않았던 시절.


나는 카메라를 들어 만대루를 다시 바라본다.

빛이 병산 쪽에서 천천히 떠오르며 기둥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오렌지빛이 서서히 마루 위를 스친다. 아직 아무도 없는 이 공간에서, 빛만이 출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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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문, 열린 상상


두 번째 사진은 정면에서 만대루를 담았다. 강렬한 역광과 렌즈 플레어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오픈 시간이 아니기에 문은 닫혀 있지만, 그 닫힘은 배제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내부를 더 궁금하게 만든다.


이 시간, 과거라면 어떤 풍경이 펼쳐졌을까.


아마 유생들은 아침 체조를 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스승께 문안 인사를 드리며 마루 아래에 가지런히 섰을 것이다. 부엌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올랐을지도 모른다.


남녀공학은 아니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공대에 가까웠을까. 무채색의 옷자락이 만대루 아래를 오갔을 것이다. 누군가는 《논어》를 읊었고, 누군가는 《맹자》의 문장을 되새겼을 것이다.


나는 그 상상을 하며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동시에 어릴 적 기억이 스쳤다. 수업을 피하기 위해 시간표를 계산하던 나의 모습.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분명 스승에게 게으르다 꾸지람을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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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사이의 시간


세 번째 사진은 만대루 아래에서 바라본 내부다. 두 개의 굵은 기둥이 화면을 나누고, 그 사이로 문과 담장이 보인다. 길게 드리운 그림자는 겨울 아침의 각도를 말해준다.


나는 이 기둥 사이에서 시간을 상상한다.


수시졸업이라면, 누군가는 오늘 떠났을지도 모른다. 스승 앞에서 마지막 질문을 받고, 마루 끝에서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그리고 짐을 꾸려 고향으로 돌아갔겠지.


졸업은 의식이 아니라 결심이었을 것이다.

이해했다는 믿음.

더 묻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


그 순간의 공기를 나는 이 그림자 속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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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약주를 상상하다


네 번째 사진은 광영지에서 바라본 장면이다. 어둠 속에서 밝은 문짝이 도려내듯 보인다. 마치 다른 세계를 엿보는 듯한 구도다.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병산의 풍경은 끝내준다. 그 산을 마주하고 공부한다면, 학문이 더 잘 들어왔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약주 한 잔이 더 간절했을 것 같다. 스승이 출타한 날, 유생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작은 잔을 돌리며 병산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사극 속 화려한 음모나 과장된 낭만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 중앙과 거리를 둔 자리에서, 이곳은 오히려 담담하고 묵직한 시간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물론 그것 또한 나의 상상이다.

그러나 사진은 늘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세계유산이라는 이름


병산서원은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배치, 만대루의 개방성, 강학당과 동재·서재의 구조는 자연과 학문이 한 호흡으로 이어진 조선의 철학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거대한 가치보다, 나에게 이곳은 겨울 아침의 공기다. 아무도 없는 마루. 서서히 밝아오는 병산. 기둥 사이를 스치는 빛.



돌아서며


한 시간 남짓, 나는 말없이 셔터를 눌렀다.

차가운 손끝, 숨결, 빛의 이동.


그리고 서원을 나서며 문득 깨달았다.

막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던 공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비어 있지 않았다. 수백 년의 유생들이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갔고, 스승의 목소리가 나무 기둥에 남아 있는 듯했다.


카메라는 기록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질문의 도구다.

2월의 병산서원에서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제도로서의 졸업이 아니었다.


나는 아마, 이해했다는 믿음과 순간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겨울의 끝에서,

겨울의 졸업을 생각하며

병산서원을 다녀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