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와 해신

by 노래하는쌤

문이

완전히

열리지는 않았다.


조금 열린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도장 안으로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그 빛을 가르며

소년이

천천히 들어왔다.


또각.


또각.


걸음은 가벼웠지만

눈빛은

묘하게 깊었다.


“여기가…

그 도장이 맞죠?”


리오는

대답 대신

소년의 발끝을

바라보았다.


도장 마루가

아주 미세하게

울리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진동.


아니다.

조금 달랐다.


어제의 울림이

칼날처럼 곧았다면,

오늘의 울림은

파도처럼

넓게 퍼져 나갔다.


소년이

도장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생각과 달리…

정말 조용하네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도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했다.


바로 눈앞에.


리오는

숨이 얕아졌다.


전장의 냄새.


수많은 결단과

물러서지 않음이

겹겹이 쌓인 기운.


흔들리지 않는

칼끝 같은 존재.


충무.


말하지 않아도

리오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운은

찰나만 머물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도장 바닥을 스치듯

서늘한 흐름이

지나갔다.


바다내음이 섞인

습한 공기.


끝을 알 수 없이

넓게 퍼지는

깊은 어둠의 울림.


칼이 아니라

파도.


베는 힘이 아니라

삼키는 깊이.


해신.


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겹쳐 있는

두 기운.


곧게 서 있는

하나.

끝없이 흐르는

또 하나.


소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 검을

배울 수 있나요?”


그 말과 함께

두 기운이

리오를 향해

천천히 모여들었다.


시험하듯.


리오는

손에 쥐고 있던

화선지를 떠올렸다.


[검은 손에 있지 않다.]


그 문장이

가슴 안에서

조용히 울렸다.


“배울 수 있어.”


리오는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베는 법부터는 아니야.”


소년의 눈에

찰나의 빛이

스쳐갔다.


그 순간

아주 잠깐

바람이

초상 앞을 스쳐갔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가볍게.


일곡도장은

두 개의 이름을

품고 있었다.


충무.


그리고


해신.


그리고

그 사이에 선

리오.


이제

이들이 어떤 검을

선택하게 될지

도장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