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이야기8
요즘에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혼자 놀고 있다. 점점 혼자 놀기의 선수가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마음이 편한 걸 진작 집에서 혼자 뒹굴 거릴 걸 그랬나 보다고 나 스스로 다독여 준다. 그동안 머가 그리도 무서웠을까? 혼자가 참 편하다고 그렇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혼자서 책도 보고, 혼자서 책도 봤다. 세 달여가 되어가니 세계명작동화 시리즈와 전래동화 시리즈를 달달달 외워버렸다. 다른 책이 읽고 싶어서 읽기책을 보다가 동시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할머이. 나가 시 한나 맹글었응께. 들어 볼랑가?”
“글 안혀도 좜 쉴라 켰는데 히바라이.”
“그대는 나의 단비였소. -노쌤-
내가 살 동안 내가 지칠 때면
그대는 나를 안아주시고
내가 살 동안 내가 넘어질 때면
그대는 내 손 잡아주셨죠.
그대는 나의 단비였소.
그대는 나의 단비였소.
메마른 가슴에 흩어 뿌려준
그대는 나의 단비였소.”
“아따 니는 재주도 좋아븐다이."
"나가 또 맹글어서 난중에 또 해준당깨."
"그래라이. 니는 얼굴도 고운디 목소리할차 곱디 고와븐당깨.”
“할머이 또 그라네. 여롭게 왜그란가? 어디 가서 그라지 마소.”
“참말이여야. 내는 인자 콩 찌러갈랑께 옥수시 찌논거 찬찬히 묵고 있어라이.”
“알았네이.”
그러다가 혼자서 연극도 하고, 혼자서 연극도 하다가 살짝 싫증이 났다. 하루는 새로운 것이 하고 싶어서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만례씨가 어디서 주워왔는지 아궁이에 불을 때려고 가져다 놓은 판자가 잔뜩 있다.
“할머이 나 이놈 좜 써도 됭가? 톱이랑 망치랑 못은 어데인능가?”
“오메 손에 까시 들강께 장갑 끼고 해라이. 톱이랑은 내 가따줄꾸마 기둘려봐라이.”
만례씨는 내가 무얼 한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법이 거의 없다.
“독박에다가 이래 놓고, 손으로 여 잡고 발로 여 누르고 살살살살 하믄 된다이. 여 해봐라이.”
만례씨가 알려 준 대로 하니 원래 하던 일 마냥 썩 잘한다.
“와따 내 더 안 알켜줘도 쓰겄고만. 고대로 해라이. 나잠 인나켜라. 내는 메주콩 마저 삶을랑께.”
만례씨가 메주콩을 삶는 동안 나는 열심히 앉은뱅이 의자를 만들었다. 엊그제도 찬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불을 지피는 모습이 신경이 쓰였다. 판자 위가 고르지 않아서 장판을 위에 대고 못질을 했다. 한참 후에 잘 삶아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을 들고 만례씨가 장독대로 나왔다.
“니는 못 허는 것이 없다이.”
“어찡가? 할머이 함 앙가보소.”
“쓰것다. 쓰거씨야.”
“그란디 할머이 그거짬 내 묵어봐도 됭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쌀바가지에 한 바가지 퍼서 준다.
“어여 어여 묵어라이.”
몇 알 집어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부지런히 씹고 있는 나를 보며 만례씨가 묻는다.
“맛이 어찌냐이? 속은 개안하니 암시랑토 안하냐이?”
‘할머이 내 아적 샘키지도 않았다이.’
아주 오랜만에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더니 양푼을 가져와서 삶은 메주콩을 많이도 덜어 놓는다.
“할머이, 내 그래 마이 못 묵는다이.”
“그랴도 모른께 더 먹고자프믄 한주먹씩 갔다묵어라이.”
만례씨는 내 속이 편한 음식을 찾은 것이 그리도 좋은지 어쩐지 몸동작이 가볍다. 당신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왠지 신이 난 듯 들떠 보였다. 그 뒤로 온갖 종류의 콩들이 삶아져서 교자상 위에 간식으로 올라왔다.
만례씨는 당신이 떠나는 그날까지 내 밥은 항상 메주콩밥으로 지어주셨다. 정작 만례씨는 콩밥을 싫어해서 밥을 먹을 때면 콩을 골라서 나를 주고 늘 맨밥만 먹었다.
만례씨는 콩밥이 싫다고 하셨어. 만례씨가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