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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식이 Mar 12. 2016

Home, Sweet Home

프롤로그



       벌써 캐나다 8년차인 나는 컬리지 졸업 후 노인관련 사회복지사(Social Worker)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취업 시장을 1년 가까이 전전하다 일단 뭐라도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조금 진로를 틀어 널싱홈에서 액티비티와 레크리에이션을 제공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개 아침엔 그룹 운동을 하고, 오후엔 그 날의 일정에 따라 오늘의 뉴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거나, 게임을 하거나, 만들기, 그리기, 요리, 다 같이 노래하기, 생일잔치, 스페셜 이벤트 등등을 진행하며, 최대한 거주자들이 생기 넘치는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그게 의외로 성격과 잘 맞아서 지난 5년간 즐겁게 일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Retirement Home이라고 하는 은퇴 후의 7~90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지원해주는 시설에서 Service Coordinator로 일을 하고 있어요. 널싱홈과 비교하면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 요구 사항도 까다롭고 가끔은 '아 널싱홈에서 할머니들이랑 풍선게임 할 때가 좋았는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전부터 꿈꿔왔던 Social Worker에 한 걸음 가까워진 지금에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금 특이한 사항으로 보자면, 나는 일본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할머니들(널싱홈 거주자들- 할머니, 할아버지 통틀어 그냥 할머니들이라고 부릅니다.)이나, 캐나다에서 태어난 Japanese-Canadian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계 커뮤니티에서 일을 합니다. 전에 일했던 널싱홈도 그랬고 지금 일하는 Retirement Home도 모두 일본계 캐네디언들을 상대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하고 캐나다로 건너와 노인복지를 공부한 덕에 좁디 좁은 취업시장을 뚫을 수가 있었어요. 이왕이면 중국어 공부를 할 걸 하는 생각도 취업 준비 시절엔 수십번도 했지만, 지금은 아 그래도 4년간 낸 등록금 허공에 날린 건 아니구나 하고 조금 뿌듯한 생각도 듭니다.


        널싱홈에서 일을 한다 하면 대개 “아유 좋은 일 하시네요” 혹은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나 역시 봉사로 하는 일이 아닌, 학교에서 공부하고 경력을 쌓아 직업 정신을 갖고 하는 일, 월급 받고 일하는 전문직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의 직업과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사실, 처음 널싱홈에 봉사활동을 나갔을 때는 나 역시 두렵고, 무섭고, 내가 과연 여기서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할아버지, 알츠하이머 등의 치매 증상으로 밥을 스스로 먹지도 못하고, 흐릿한 눈빛에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 매무새도 엉망인 할머니 등등.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거부감이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그 널싱홈은 외곽에 있었어서 거주자들도 직원들도 99프로 백인들이었기에(딱 한 명 파트타임 물리치료사가 인도 사람.) 더욱 낯설고 적응하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액티베이션 직원과 프로그램 직원을 돕는 일을 하면서도 내가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습니다. 영어만 좀 늘거든 한국으로 돌아가 다른 직종의 일을 알아봐야겠다 하는 생각도 하고요. 한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내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는데, 그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 요양원의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 보면서 부터였습니다.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 4-50대의 아주머니들이었는데 참으로 다들 밝고 씩씩해 보였더랬습니다. 큰 목소리로 웃고 말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며 일을 하는 모습들이 참 멋져 보였어요. 거주자들에게 의식적으로 상냥하게 자상하게 잘 대해 주려 노력하는 것보다 마치 친구를 대하 듯 친근하게 그들을 대하면서요. 그때만 해도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정식으로 일을 해 본 적도 없는 20대 중반의 꼬맹이(?)였거니와 캐나다에서 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주눅이 들어있었기에 ‘아.. 나도 저렇게 건강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지금은 나도 “어쩜 그렇게 항상 웃는 얼굴이에요?” 라든가 “어쩜 그렇게 일하는 게 즐거워 보여요?”라는 등의 칭찬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점점 나도 그때 그 아주머니 직원들처럼 되어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쁘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양로원, 요양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곳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의 이야기입니다. 그들만의 작은 사회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한 명씩 천천히 관찰해보고 그들 개인 개인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나에게는 그저 또 한번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만약 이러한 글 쓰기 작업으로 인해 나 역시 매일 마주하는 이 얼굴들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그들과 함께한 나의 일과 역시 다시금 소중하게 느낄 기회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한 명 한 명 나의 소중한 그분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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