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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Jan 11. 2023

글쓰기에서 배우는 힘 빼기

브런치로 첫 기고 제안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알림이었다. 메일을 열어보니, 그동안 썼던 브런치 글 중 하나에 대한 기고 요청이 들어와 있었다. 언젠가 꿈꾸던 순간이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와서인지 기쁘기보다는 혼미했다. 다행히 메일로 소통하면서 받은 의뢰서에는 관련된 내용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글의 수정 방향이나 분량은 요청받은 대로 진행하면 될 것이고,  가장 중요한 제출기한은 무려 열흘이었다. 처음부터 쓰는 글도 아니고 원래 있던 글을 수정하는 것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은 기쁜 마음으로 푹 쉬고, 개운한 마음으로 글을 다듬어보기로 했다. 


다음날 이 여유로움은 산산조각이 났다. 다시 만난 글을 보니,  이런 수준의 글을 발행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주장을 담은 글이었지만 논리적이지 못했다. 주장은 감정적이고, 근거는 부족했으며, 문단 사이가 연결되지도 못했다. 물론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부터는 논리보다는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긴 했다. 특히 요청을 받은 글에는 혐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기에, 당시 글을 쓸 때도 구성이 어색하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기고용으로 수정해야 하니만큼 나부터 어색함을 느낀다면 형편없는 글이 되어버릴 것이다. 


생각의 뿌리만 남긴 채 기초공사부터 다시 시작했다. 브런치에 쓴 글 중에는 처음으로 개요를 써서 글을 구성했다. 중심내용도 하나 늘려서 서론/본론 1~3/결론이라는 클래식한 논설문 형태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원고지에 작성했다면 지우다 종이가 다 닳아 없어질 정도로 수정의 연속이었다. 월요일에는 '이거다'하는 영감으로 휘갈겨 썼던 내용을 화요일에 보면 주제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다시 고친 내용은 또 다음날이 되면 여기저기서 빈틈이 보였다. 내용 수정만 하다가 주말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넉넉해 보이던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금요일에 쓴 얼개도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이것으로 고정하고, 주말에는 문장과 단어에 대한 고쳐쓰기만 했다. 이때도 끝없이 문장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한 것은 물론이다. 


최종본을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다. 나의 고질적인 습관이기도 한 불필요한 문장 중복을 위주로 글을 줄여줬다. 그런데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조금 더 일찍 아내에게 보여줄걸 후회하며 ver. 최최최최종본 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문장을 일부 수정했으니 최종적으로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수정본을 열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가 이런 느낌일까. 딱딱하기 그지없던 글은 적절한 문단 조정과 문장의 변화를 거쳐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으로 맛본 편집자의 내공, 그리고 윤문의 힘이었다. 수정된 글을 보고 나서야 아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저 그런 논술 답안 같았으며 원래 브런치에 쓴 글보다는 못했다고. 


일주일이나 정성을 다해 고친 글이, 하루 초고를 쓰고 다음날 고쳐서 바로 올린 글 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이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우선은 두 글을 쓸 때 주로 썼던 뇌가 달랐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우뇌가 핑핑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반면 기고를 쓸 때는 좌뇌가 지끈지끈거렸다. 즉 처음 글은 불쾌한 감정을 잘 설명하기 위해 사례와 이유를 들었고, 후자는 하고자 하는 주장을 타인에게 설득하기 위해 합리적인 근거를 찾는 노력이 많았다. 부담감의 차이 역시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편하게 내 생각을 적어보는 글과  달리, 타인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글이기에 '잘 써야 한다'는 긴장감이 컸다. 한동안 줄어들었다고 생각한 인정욕구가 다시금 팽창하는 순간이다. 


결과적으로는 원래의 글이 논리성은 부족하더라도 신선함과 유연함에서는 오히려 앞서게 되어버렸다. 다시금 불변의 진리를 깨닫는다. 힘을 빼야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최근에 악필을 고치기 위해 글씨연습을 시작했는데, 여기에서도 필압이 너무 강해 글이 뻣뻣해진다는 것을 알아챘다. 올해 '글'쓰기에서도 글'쓰기'에서도 배워나가야 할 점은 바로 힘을 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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