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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Dec 22. 2022

뱅쇼에 넣는 건 계피일까 시나몬일까?

'안다고 말하는 것'의 무거움이란

집에 남은 와인이 있어 뱅쇼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과일을 넣고 끓여낸 뱅쇼의 맛이 뭔가 부족하다. 생각해보니 계피가 가진 살짝 맵고 강렬한 향이 없어 허전함이 느껴졌다. 홀짝홀짝 마시면서, 이 공허함을 채워주기 위한 무언가를 생각해 본다. 그런데 여기에 넣는 건 계피일까? 시나몬일까?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지금까지 계피와 시나몬에 대해 오해했던 부끄러운 개인사(史)가 생각났다.



시나몬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마주친 곳은 학교 옆 어느 카페였다. 평범한 음료인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밑으로 '시나몬' 카푸치노가 메뉴판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카푸치노에는 꼭 시나몬 가루가 있어야 한다는 사장님의 철학이 반영된 있는 걸 지도? 어차피 그 시절 나는 카페라테와 카푸치노가 뭐가 다른 지조차 몰랐었기에, 막연하게 '시나몬 가루를 뿌리면 카푸치노가 되는가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생각도 하지 못하던 계피와 시나몬의 관계성을 알게 된 것은, 인터넷에서 조롱이 가득 담긴 짤을 하나 보고 나서다. 커피=자판기 커피라는 공식이 성립하던 시절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일반 커피보다 10배는 비싼 스타벅스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갖은 조롱이 넘쳐났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내용 중 하나가 '계피는 싫지만 시나몬은 좋다'로 시작하는 글이다. 마늘빵보다 갈릭브래드, 장화보다 레인부츠처럼 영어만 쓰는 허영에 찬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었고, 나아가서는 외국의 것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부끄럽게도 댓글을 보고 나서야 역으로 시나몬이 계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찾아본 영어사전에도 cinnamom은 분명 계피라고 나와있었다. 그 당시 나는 영어를 잘 못하는 열등감을, 한글과 영어를 섞어 쓰는 사람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 조롱의 대열에 당당히 합류하였다. 온라인은 물론 모임에서도 허영에 빠진 사람들을 비판할 때면 '계피는 싫지만 카푸치노에는 시나몬을 뿌리는 사람들'을 주로 인용했다.


그런데 작년, 즐겨보는 유튜버인 승우아빠의 영상을 정주행면서 눈에 들어온 제목이 있었다.  '시나몬 향은 고급스러운데 계피향은 아저씨 같아요'(영상링크) 라는 영상이다. 지금까지 생각하지도 못하던 두 향신료의 차이가 자세히 나와 있었다. 우리가 계피라고 부르는 것은 'Cinnamonium cassia'고, 시나몬이라고 부르는 것은 'Cinnamonium verum'이라고 한다.  게다가 향신료로 쓰면 색, 맛, 향 모든 것이 다르므로 별개로 보는 게 맞다는 주장이었다.


사전을 찾으면서까지 확인했던 지식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 잘못된 내용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다니, 몹시 부끄러웠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사실은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알라'라고 한다. 그 무지함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결국 계피와 시나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동안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다시 2% 부족한 뱅쇼로 돌아왔다. 계피와 시나몬 중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인터넷에서는 딱히 정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니 향신료니까 취향에 맞게 쓰면 될 일이다. 계피가 좋으면 계피스틱을, 계피는 싫지만 시나몬이 좋으면 시나몬 스틱을 넣으면 끝! 다른 걸 쓴다고 해서 서로 뭐라 할 일도 아니다. 다만 오늘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으니, 가벼워진 맛 대신에 '안다고 말하는 것'의 무거움으로 가득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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