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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Dec 20. 2022

불멍, 물멍, 눈멍

비움으로 채운 1박 2일 공주 여행기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라는 복잡한 시기. 많은 것이 다르지만 내향형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부부는, 조용한 곳으로 떠나 하루 쉬고 오는 것에 손쉽게 합의했다. 여행지로 결정한 공주로 출발하는 아침, 창문을 여니 세상의 모든 색들이 흰색과 뒤섞여있다.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설경이 마음을 들뜨게 함과 동시에 도로가 얼지 않을까 하는 운전자로서의 걱정이 함께 마음을 채웠다.


평소보다도 조심스럽게 운전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공주에 도착했다. 밥을 먹고는 평소에 자주 찾던 공산성 쪽과 반대 방향인 공주대 근처로 향했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는 이곳에는 조금 특별한 구경을 할 수 있는 카페가 있었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공간의 매력은 벽난로에서 나왔다. 보통의 카페와 달리, 이곳에 있는 벽난로는 정말로 장작을 때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근처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방문객들을 머나먼 유럽 시골마을로 안내하고 있었다. 마침 그쪽 감성이 넘치는 뱅쇼와 차, 직접 만든 케이크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평일에 온 덕택에 벽난로 바로 옆 테이블에 앉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각자 가져온 책을 읽으며가, 잠시 타닥타닥 거리는 벽난로에 한눈을 팔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느릿하지만 빠르게 지나갔다.



하루를 머물기로 한 숙소는 공주 시내에서도 30분을 더 가는 한적한 곳에 있었다. 터널을 지나니 수확을 끝낸 논밭이 하얀 도화지로 변해있어, 설국의 분위기를 더했다. 재미있게도 정작 숙소는 한여름의 열대지방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였다. 리셉션과 숙소 건물, 안팎의 조형물까지 라탄으로 가득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될, '눈 내리는 발리'의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방마다 있는 실외공간에는 자쿠지가 놓여 있었다. 여름철에는 야외수영장과 이곳을 오가며 편하게 수영을 할 수 있도록 동선이 설계되어 있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보온을 위해 비닐로 덮어놓고 있었다. 어쨌든 온수를 틀고 탕에 들어가니, 순식간에 열대에서 일본이나 극지방의 온천으로 날아온 것만 같다. 해가 질 때까지 몸을 뉘어 있으니, 불안과 후회로 가득 찬 미래와 과거 대신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감정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몸소 느꼈다. 



밤 사이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눈이 더 내렸다. 눈앞에 쌓인 눈을 보자 멀리서 바라볼 때 느낀 낭만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운전에 대한 걱정이 매웠다. 10년간 이어진 장롱면허를 청산하고 운전을 한 지 이제 겨우 1년이다. 게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가려는 곳이 산 중턱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어제보다도 천천히, 내비게이션이 30분 걸린다고 안내한 길을 1시간 넘게 운전해가며 목적지로 향했다.

'국내 크리스마스 명소'로 인스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던 카페다. 평소에는 수영장과 함께 바라보는 산자락으로 유명하지만, 지금 시즌에서는 야외에 있는 거대한 트리가 더 눈길을 끌고 있었다. 밤사이에 얼마나 많은 눈이 왔는지를 트리 위에 쌓인 눈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파묻히다시피 한 모습이 오히려 '진짜 산타마을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부추겼다. 

다시 내부로 돌아와서는 얼어버린 수영장을 바라보며 또다시 머무름의 시간을 가졌다. 불멍과 물멍을 했으니  마지막으로 눈멍을 하는 셈이다. 틈틈이 어제부터 읽었던 책을 읽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신호로는 꽤나 적절하다. 마침 눈이 다시 조금씩 내리는 분위기라, 산을 내려가는 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여행은 크게 무언가를 채우려는 여행과 반대로 비우려는 여행이 있다고 한다. 이번 1박 2일은 후자에 충실한 여행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이 느껴진다. 불안과 근심 걱정을 조금이나마 장작불에 태우고, 자쿠지에 녹이고, 눈밭에 뿌리고 온 것만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으로는 꽤나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 방문지 목록 >

1. 카페 미세스피베리 (인스타그램

2. 스테이인터뷰 빌라 드 우 (홈페이지)

3. 광덕산 카페 숲너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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