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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Dec 13. 2022

겨울에는 굴조심


역사적인 16강 브라질전이 있던 새벽에 잠이 깬 것은 축구가 아닌, 옆에서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서였다. 아침이 밝아도 아내의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황급히 회사에 연락을 해서 휴가를 내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위염과 장염이 동시에 발생했다는 진단이었다.


다행히 하루 종일 누워서 음료수와 흰 죽만 먹고나니, 다음날에는 기운을 차린 모습에 안심했다. 다음날, 이번에는 내 상태가 이상해졌다. 문도 안 열어놓았는데 몸이 춥다. 열이 조금씩 오르고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하루를 보냈다.



하루 걸려 부부가 같은 증상을 보인건 필히 음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였을지 먹었던 음식들을 되짚어보았다. 삼겹살, 부대찌개, 그리고 집에서 받아온 김치. 그런데 그 김치에서는 시원하고 물컹물컹한 식감을 느꼈다. 굴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굴 넣은 김치를 꽤나 오랫동안 먹었다. 장사를 하실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으신 외할머니께서 정성을 담아 담그신 김치. 수십년 동안 먹었지만 한 번도 탈이 난 적은 없었다. 지난주 본가를 다녀오며 동생네와 함께 분배받았던 이 김치는 지하철을 타고, KTX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는 머나먼 여정을 함께했다. 겨울철이지만 오히려 난방때문에 내부는 따뜻하니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 그게 아니면... 혹시 굴 자체가 문제가 있는건 아니었을까?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동생과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이 본가에서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들 내외에게 잘못된걸 주셨다는 생각에 슬퍼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전화했나 하는 후회도 잠깐 들었다. 그렇지만 가족이 모두 아픈것보다야 잠깐의 안타까움을 공유하는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어머니와의 통화가 끝나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네는 먹던 김치부터 해치우느라 김치통을 열지도 않았단다.


겨울철 굴 때문에 문제가 생긴 사람의 십중팔구는 노로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한다. 식중독과 달리, 100도 이상에서 1분간 가열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 모르니 받은 김치는 볶음이나 찌개에 넣어 먹어야겠다. 한편으로는 괜히 예전같지 않은 몸이 슬프다. 꼭 굴이 아니더라도, 언제부턴가 회를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는것이 느껴진다. 사실 어릴때는 굴의 우유맛이 비려서 너무 싫었었다. 이제야 생굴의 맛을 알게 되었는데, 몸은 생굴을 먹기 힘들어졌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부부 모두 건강을 되찾은 주말, 장모님 생신에 맞춰 처가집으로 향했다. 김치 속 굴 보다는 부산에서 먹었던 생굴이 아내에게 문제가 되었고, 장염이 전염이 되는 특성이 있어 그게 사위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하셨다. 뭐가 문제든, 결국 생굴이 원인이라는 결론. 이제 겨울에는 불조심 말고도 굴조심도 실천해야겠다. 자나깨나 굴조심! 싱싱한 굴도 다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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