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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Apr 07. 2023

여전히, 창가 쪽 자리가 좋다

비행기 창 너머에는 가끔 특별함이 있다

코로나가 끝나고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 부푼 마음을 안고 공항에 도착한 당신에게 카운터에서 질문을 한다. "창가에 앉으실 건가요? 복도 쪽 자리를 드릴까요?" 보통 해외여행 경험이 많을수록 복도 쪽을 선호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비행기 날개가 가로막는, 비행기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자 창가를 택한다. 그러나 몇 번이고 비행기를 탈 때마다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게 되면 차라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복도 쪽 자리를 택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법 비행기를 탔지만, 아직도 여전히 창가 쪽 티켓을 발권한다. 화장실 갈 때조차 옆사람에게 부탁해야 하고, 자고 있다면 깨우기조차 난감한 상황을 감수하는 이유가 있다. 시간과 날씨, 그리고 장소가 우연히도 합을 이루는 때가 있다. 그 우연이 주는, 평소와 다른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바라보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그 행운을 얻은 적은 두 번이 있었다. 


첫 번째, 시드니에서 시작한 호주 여행을 멜버른에서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였다. 습관적으로 항로가 그려진 지도를 보던 중, 기대하지 못했던 단어를 발견했다. 'Uluru(Ayers rock)'. 호주를 상징하는 자연경관이지만 내륙 깊숙이 숨어 있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던 곳이다. 놀랍게도 그 거대한 바위바로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이윽고 거대한 바위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고, 다시 사진으로 담은 이 거대한 바위가 울루루가 아닌 카타추타(Kata Tjuta)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꽤나 나중의 일이었다. 울루루에서 서쪽으로 45km 정도 떨어져 있고, 울루루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다. 만일 반대쪽 창가 자리에 앉아있었다면 정말로 그 바위의 모습을 위해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어떠하랴. 아직도 쉽게 다가가기 힘든 호주 중심부의 거대한 자연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 갈 수 있었으니.


두 번째 행운. 터키로 가는 비행기에서 에서 카프카스 산맥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터키나 로마로 가는 항로는 (지금은 못 가는) 시베리아보다 남쪽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이 거대한 산맥을 지나가게 된다. 첫 번째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이 바라본 풍경이겠으나, 산맥이 보이는 창가를 택해야 하며 그 시간에 자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것은 마찬가지다. 장관을 이루는 만년설을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알지 못하고 탔기에 스스로에게는 이 또한 커다란 우연의 선물이었다.


모든 항로에 특별함이 숨어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존재하더라도,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또 다른 행운을 바라볼 수 있다. 그 희박한 우연이 찾아올 때를 위해, 앞으로도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말할 것이다. 

"창가 쪽 자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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