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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Sep 26. 2022

17. 힐링 에세이의 위로는 '나약함'이 아니다

무기력증에 빠졌을 때, 벗어날 수 있는 방법

<고백합니다>



힐링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위로는 독자에게 무책임하다고  

'그래도 괜찮다'는 말은 나약함을 감추기 위함이라고

그 달콤함에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기력에 빠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희망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는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절망에 빠진 사람을 일어설 수 있게 만들 수 있음을

의지는 '안'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못'가질 수도 있음을




고향에서 돌아온 그 주는 유난히도 피곤했다. 우울증에 빠진 이후에는 기본적으로 피곤하긴 했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지나쳤다. 침대를 벗어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어찌어찌 침대를 탈출해도 고작 소파에서 유튜브를 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요가, 필라테스, 드로잉, 집안일, 요리까지 그 어떤 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겪었던 우울함과는 조금 다른 색깔의 힘듦이 느껴진다. 바로 무기력이라는 새로운 녀석이 찾아온 것이다.


왜 지금 타이밍에 무기력이 찾아온 것일까? 고향이긴 하지만 집을 벗어나 여러 날 머물다 온 피로가 남아있었고, 특히 할머니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난 후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날씨도 우중충했고, 수면 패턴도 많이 망가져 있었다. 또한 최근에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활동의 여파도 있었다. 우울증과 관련된 글쓰기를 블로그로 시작했고, 어플을 통해 비대면 텍스트 상담을 신청해서 매일매일 마음을 살피는 일도 했었다. 특히 바로 전 주에는 내면 아이를 찾고, 화해하려는 노력을 진행했기에 정신의 소모가 더욱 컸다.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니, 낮아진 정신력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몸이 힘들다는 사인을 보내고 아무 활동도 못하게 만든 것이다.



또다시 나쁜 습관이 나왔다. 어떻게든 이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도 할 수 있는 블로그와 텍스트 테라피에 집착했다. 그렇게도 애쓰지 말라는 가르침을 계속해서 들었는데, 이번에도 이성의 힘으로 무기력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이틀이 지났다. 3일 연속으로 퍼지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이것도 역시 공부를 하면서 몸에 밴 습관이다. 하루 이틀은 쉴 수 있어도, 사흘을 넘어가게 쉬면 습관으로 굳어져 회복하기 어렵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시험을 준비할 때는 바람직한 습관이었지만, 이 역시 이성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몸은 여전히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성이 타협점을 찾아냈다. 유튜브로 명상과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유튜브로 '무기력증 명상'을 검색하고, 썸네일에 끌려 하나의 영상을 눌렀다. 무기력증 때문에 힘들다는 제목의 명상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A4z04Oew9c



'왜 우리는 항상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영상이 물었다. 
'무엇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뒤처지기 때문에?'
스스로 답했다.
'무기력할 땐 온전히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영상이 말했다. 
'온전히 무기력하게 지내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다시 답했다.

마지막으로 영상이 말했다. 

'이렇게 누워보니까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일어나서 나가세요 

한 번 영상을 믿어보기로 했다.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침대와 물아일체의 경지가 되어 하루를 보냈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유튜브를 보다가, 옆에 있는 책을 보다가, 다시 피곤해지면 잠을 청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자기 계발서에서는 그렇게도 비난받는, 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무가치한 모습으로. 



오후가 되니 갑자기 빨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일이다. 집에 건조기도 있어서 따로 널어 말릴 것도 아니다. 몸도 그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이었는지 일어나려는 의지에 순순히 응했다. 저녁 시간에는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무기력해진 후 처음 느낀 배고픔이었다. 기분이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격언이 생각나, 다시 몸을 일으켜 집에 있는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씻고 다시 침대에 누워있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휴직을 한 이후로 처음으로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중간에 깨거나 일찍 일어나는 일 없이, 햇살이 침대를 비추기 시작할 때 눈을 떴다. 그렇게 일어나자마자 따사로운 햇빛에 이끌려 동네 한 바퀴를 뛰었다. 무기력증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때는 통제를 거부하던 몸은, 무기력을 수용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야 비로소 활력을 되찾았다. 문득, 서점에 있는 수많은 힐링 에세이를 보면서 들었던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너무 무책임한 위로, 나약함을 합리화한다는 비판... 너무나도 오만했었다. 의지로 극복할 수 없는 무기력도 있으며, 이때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더 큰 의지가 아닌 위로와 공감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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