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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Sep 29. 2022

18. 그렇지만, 일단 내가 살아야지요

질병휴직 절반이 지난 소감과 마무리 글

9월이 저물어간다. 6월부터 들어간 질병휴직도 벌써 절반이 지났다. 오랜만에 잠을 깨지도, 새벽에 눈을 뜨지도 않고 푹 자고 일어났다. 요가를 하러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 쌓인 빨래를 해치우면서 지금까지 변화한 모습을 바라보기로 했다.


우선 신체 건강은 상당히 좋아졌다. 덜 먹고, 운동하고, 스트레스가 줄어든 덕에 살이 빠졌다.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다음 달로 예정된 당뇨와 콜레스테롤 검사도 조금은 좋아질 걸로 기대한다. 한편 종종 친구들을 만날 때, 인상이 좀 변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치아교정과 요가, 그리고 아직은 얼굴에 남아 있는 우울함이 합쳐진 결과다. 가끔 너무 어리숙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했기에 개인적으로는 인상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마음에도 변화가 있었다. 휴직을 시작할 때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다만 정상적인 감정의 범위가 0(매우 불행)에서 10(매우 행복)까지 있다면, 지금은 0~7 정도 수준이다.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한 표정이 잘 나오지 않아 고생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정신건강의 회복보다 약물의 도움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수면 약을 먹지 않게 되면 여전히 오전 2~3시에 일어나 고통스러운 새벽시간을 보낸다.



지금 시점에서 마음에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바로 회사에 대한 감정이다. 사람에 대한 원망은 점차 희미해져 가는데, 조직에 대한 원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마침 감정일기를 되돌아보니, 거의 모든 글에 회사에 대한 부정인 감정이 묻어있었다. 회사를 떠오르면 생기는 이상반응도 여전하다. 가끔 회사에서 전화가 오거나, 회사 근처를 간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을 쑤시는 통증이 느껴진다. 감당할 수 없는 업무를 받아내었던 기억, 힘들지만 당연히 해내야 한다는 사무실의 공기가 떠오르면서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회사에 마음이 떠났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브런치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글들은 대부분 회사 또는 퇴사 생활을 다루고 있다. 퇴사를 해서 좋더라, 아니 너무 힘들더라, 밖은 더 어렵기에 어떻게든 버텨야 하더라, 버티다 보니 괜찮아지더라... 당연하지만 작가마다 생각하는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지금은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어느 것도 선택하기가 두렵다. 바로 복직을 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우울증의 영향인지, 약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전에 비해 현저하게 피곤함이 몰려온다. 게다가 직장인의 생명수인 커피도 마실 수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퇴사를 할 수도 없다. 월급은 달콤한 마약이라는 말도 있듯이 안정적인 소득이 없어지는 건 정신적으로 큰 압박이 된다. 곧 경기침체가 다가올 예정이라 바깥의 추위는 더 매서울 전망이다.


두 가지 생각의 타협점이자, 생각을 유예하는 방법도 있다. 휴직을 조금 더 연장하는 것이다. 진단서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직장 스트레스뿐 아니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쌓아 온 내면의 부조리함이 터져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생 약을 달고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두어 달 뒤에 씻은 듯이 나을 수 있는 병은 절대 아니다. 다만 회사의 허락이 다시 필요할 것이고, 더 나은 치료방법인지 의사 선생님과도 상의가 필요하다. 다행히 이 부분에서는 가족들의 지지가 있어 안심이 된다.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이 인정하지 않아 힘들어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고마움을 언제나 느끼게 된다.



이쯤에서 <우울증으로 질병 휴직한 회사원 이야기>를 잠시 쉬려고 한다. 우울한 투병기를 적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정신력 소모가 크다. 이 정도면 우울한 나의 내면을 충분히 파 해쳤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즐거웠던 경험을, 그리고 경험이 아닌 생각을 독자 여러분들께 전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철저하게 치유의 목적으로 시작한 글쓰기지만, 어찌어찌 브런치에서 보다 많은 분들께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었다. 한 번은 조회수가 수천 회가 나온 적이 있어 화들짝 놀랐다. 통계를 찾아보니 다음 메인에 요리 관련 글이 올라왔던 것 같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라이킷'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린다. 우울함으로 힘들어하신 분들께 이 글이 조금이나마 공감과 위로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질병휴직'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찾아온 분들께 부탁드리는 말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질병휴직을 고민하고 계시다면, 위험한 상황입니다. 어쩌면 저처럼 조금 늦었을지도 몰라요. 가까이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전화를 걸어 일정을 잡읍시다.

 회사 일이 바빠 시간이 나지 않을 수도, 가족들의 눈치가 보일 수도, '정신과'에 간다는 사실 자체가 거부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내가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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