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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Sep 30. 2022

조혈모세포, 서약에서 기증까지

잠깐의 번거로움으로 누군가를 살린 경험

조혈모세포는 혈액을 구성하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을 만들어내는 줄기세포를 말한다. 백혈병 같은 혈액 암 환자들은 조혈모세포가 건강한 혈액세포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건강한 조혈모 세포를 이식받아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혈액세포를 만들어 냄으로써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출처 : 대한적십자사)




2019년의 봄날, 사무실 전화로 갑자기 수화기가 울렸다.


"전화받았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혹시 노수강 씨 맞나요?"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저희는 조혈모세포 기증과 관련하여 전화드렸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과 유전자가 일치한 환자가 있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때 서약하신 기증 의사를 다시 물어보고자 연락드렸습니다"


갑작스러운 연락이었기에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8년 전, 대학 축제가 열리던 광장이 떠오른다. 축제 부스 중 하나에서는 헌혈 관련 캠페인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굿즈를 받기 위해 활동을 하다 보니, '조혈모세포 기증 서약'을 하게 되었다. 조혈모세포에 대한 설명과, 실제로 기증을 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큰 에피소드가 아니었기에 곧 잊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조혈모세포 기증 서약을 한 사람이 실제로 기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대략 2만 분의 1, 0.05%에 불과하다. 그 엄청난 확률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굉장히 놀라웠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기회이니 마땅히 기증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직장인이기에 따로 시간을 내어야 한다는 점, 어쨌든 나의 신체를 사용(?) 해야 하는 점이 있기에 당장 답변할 수는 없었다.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해달라는 말과, 본인의 마음 이외에도 가족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니 꼭 상의해달라는 말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실제로 조혈모세포 기증 의사가 있더라도 가족의 반대와 회사 일정 문제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과거에는 주로 '골수이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조금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지금은 골수이식보다는 혈액을 통한 채취(말초혈 기증)를 활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소요 시간도 적은 편이다. 


가족에게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걱정하셨지만, 의료계 전공이었던 동생이 앞장서서 설명해준 덕분에 결국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회사에도 양해를 구해야 했다. 특히 최종적으로 기증을 하기 위해서는 2~3일 정도 입원을 위해 일정을 비워야 했다. 다행히 당시 팀장님께서 개인 사정을 상당히 배려해주시는 스타일이셨고, 팀원 전체가 생명을 위한 활동을 응원해주었다. 모두의 동의와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전화를 걸어 기증 의사를 다시 전했다.



조혈모세포 기증 절차는  유전자 정밀검사 → 건강검진 → 조혈모세포 증식을 위한 주사 투여 → 입원 후 기증 순서로 과정이 이루어졌다. 모든 과정에는 코디네이터가 배치되어 기증자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배려해주고 있었다. 간혹 인터넷에 부정적인 후기가 있다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항상 담당 코디네이터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덕에 많은 불편을 덜었다.


유전자 정밀검사는 기증자와 환자의 유전자 일치 여부를 다시 한번 정밀하게 확인하는 절차다. 지역 보건소에 가서 채혈을 하고, 그 혈액은 빠른 검사를 위해 퀵으로 보내졌다. 정밀검사에서 유전자가 불일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했고, 나 역시 별문제 없이 지나갔다. 이후에는 기증자의 몸 상태를 점검하는 건강검진이 진행된다. 통상적인 건강검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기증 예정일이 다가왔다. 우선 입원 전에 조혈모세포를 증식하기 위한 주사를 맞게 된다. 3일간 주사를 맞았는데 건강과 연령대에 따라 최대 5일까지 연속으로 맞아야 한다고 했다. 내부에서 인공적으로 세포를 배양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통증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골수 내부에 세포가 늘어나면서 뻑뻑해지며(?)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2일 차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아프다'라는 느낌보다는 '쿡쿡 쑤신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증을 포기하려고 하면 주사를 맞기 전에 반드시 철회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기증자가 조혈모세포를 배양하는 동시에 환자의 몸에서는 조혈모세포를 제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장 난 혈액 공장을 부수고 새로운 혈액 공장을 들여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기증 의사를 철회하게 되면, 환자는 백혈구를 만들 수 없기에 면역력이 사라져 끝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실제 사례가 있었던 만큼, 특히 이 부분에서 코디네이터가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 느껴졌다.


배양 주사를 맞고 3일 후에 입원하여 실제로 기증을 진행했다. 첫날은 간단한 혈액검사와 건강검진을 다시 받고, 마지막 주사를 맞았다. 둘째 날에는 실제로 기증을 했고, 하루 휴식 후 3일 차에 퇴원을 하는 일정이었다. (단, 기증 때 조혈모세포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추가 기증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기증은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채혈로 진행한다. 헌혈 중 성분헌혈과 유사한 방식인데, 혈액 속에 있는 조혈모세포를 빼내고 남은 피를 다시 몸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4시간에서 6시간 사이가 걸리는데, 사진과 같이 누워서 진행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기증이 끝나니 골수 밀도가 다시 낮아져서 그런지 통증이 사라졌다.



하루 정도 휴식을 하니 몸에 큰 무리가 없었고, 퇴원과 함께 기증 절차가 모두 끝났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기증이 무사히 끝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중간에 기증 예정일이 한번 미뤄진 일이 있었는데, 대부분 그 이유가 환자의 상태가 기증을 받기 힘들 정도로 나빠진 경우라고 한다. 그래도 결국 기증을 받으셨으니 정말 다행이다. 기증자와 수혜자를 서로 알 수 없게 하는 방침이 있어 누구신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과정 전체에서 기증자에 대한 세심함이 느껴진 점도 좋았다. 기증일의 경우에는 환자의 상태와 일정이 중요했지만, 이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과정에서 코디네이터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물론 대접받자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개인의 희생이 있기에 정말 작은 부분까지 배려해주심이 느껴졌다.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은 전국 대한적십자사 헌혈 장소에서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은 기증자가 되었지만, 훗날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지만) 나 또는 주변 사람이 기증을 기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많은 사람들이 기증 서약에 참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잠깐의 번거로움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마지막으로 조혈모세포 홍보대사이기도 한 '닥터프렌즈' 이낙준 선생님의 실제 기증 후기 영상을 남기니, 자세한 내용 설명과 기증 후기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mPkVfNyo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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