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
'사흘은 4일 쉬는 거 아닌가요?'
'과제 제출 금요일까지 아니에요? 금일 자정까지라고 하셨었는데'
문해력이라는, 조금은 생소했던 단어가 온라인상에서 활발히 오르내리게 만든 화두가 되는 문장들이다. 특히 EBS에서 작정하고 아이들에 대한 문해력 문제를 제기한 이후로, 세대와 공간을 막론하고 '요즘 것들의 문해력'에 대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MZ세대라고 불려지는 사람의 입장에서, 지금의 문해력 논란은 조금 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직 교사도, 학부모도 아니라 교실에서의 상황을 알 수는 없다. 다만 마치 지금의 문해력 문제가, '꼰대 담론'에 대한 기성세대의 역공으로 비친다는 점에서 불편한 부분이 있다. 도대체 무엇이 불편한지, 생각을 한 번 정리해보았다.
< 불편한 점 1. 어휘력은 그 자체로 문해력인가?>
EBS 다큐멘터리를 비롯하여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 부족을 짚는 장면에는 대부분 부족한 어휘력을 꼬집는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긴 글을 읽을 수가 없어요'. 물론 어휘력이 부족하면 글을 읽을 수 없기에, 요즘 것들의 문해력이 부족한 것에 대한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휘력 부족 '만'을 근거로 문해력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것에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논의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사전에 정의된 문해력과 어휘력을 찾아보았다.
문해력 :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어휘력 :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개념들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으며 그중 하나는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이다'였다. 즉, 문해력의 구성요소로 어휘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불편함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단어를 몰라서 글을 이해를 못 한다는 것만을 말한다면, 그것은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어휘력의 문제로 구체화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요즘 것들은 단어를 몰라'와 '요즘 것들은 글을 읽을 줄 몰라'는 다른 말이다. 정말 문해력이 문제라면, 어휘력의 부족 이외 문해력 부족을 말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가 불편한 다른 이유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교육계의 공포 마케팅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동네 학원가에는 벌써 심심치 않게 '우리 아이의 문해력, 이대로 괜찮겠습니까?'라며 학부모들의 걱정을 자극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영어유치원, 수학 선행학습처럼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부담을 지우는 담론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 불편한 점 2. 젊은 세대의 '반지성주의'라는 논리의 비약 >
어휘력의 문제를 문해력의 문제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생각보다 꽤 많이 찾을 수 있었다. 해당 주장에 대해 나오는 가장 많은 반론은 젊은 세대가 가진 소위 반지성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어휘력이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다.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화를 내는 요즘 세대의 반지성주의적인 태도가 문제다'라는 것이다.
자신의 무지를 반성하고, 새롭게 알려고 하는 태도는 분명 필요한 삶의 자세이다. 그런데 그러한 삶의 자세를 가지지 못한 것을 '요즘 것들'의 '반지성주의'로 규정하게 된다면, 이는 논리의 비약임과 동시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의 진정한 뜻은 '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알라'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도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문제를 세대 담론에 끌어들인다는 사실이 몹시 불편하다.
(사실 문해력 문제를 '독서량'에 한정할 경우, 문제는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이다. 문체부에서 발표한 '2021 독서실태조사'에서 초중고생의 독서량(교과서, 참고서 등 제외)은 34.4권, 성인의 평균 종합 독서량은 3.4권이다. 성인의 52.5%는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요즘 것들의 입장에서 문해력 부족 문제를 생각해보았다. 문제 제기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스마트폰 도입 이후에 긴 글에 대한 독해 능력은 떨어지고 있음을 나부터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하물며, 태어나면서 모니터는 터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 세대들에게는 어떻겠는가?
다만 사회 구조상, 특히 직업을 가지게 되면 기성세대에 동화할 수밖에 없기에, 의식적으로라도 미래 세대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10대 친구들은 카톡을 잘 쓰지 않고 페이스북을 메신저로 이용한다. 그들이 성장하여 카톡으로 업무지시나 보고를 하는 회사에 들어가면,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카톡 세대가 은퇴하기 전까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들도 카톡에 동화되어 다음 세대에게도 카톡을 요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지금 문제가 되는 많은 한자 어투는 사실 기성세대, 특히 '높으신 분'으로 부를 수 있는 의사결정자들의 입맛에 최적화된 표현이다. 조직 내 권력이 기울어져 있는 만큼, 언어의 기울어짐도 다르지 않다. 어차피 윗사람들의 니즈에 맞춘, 한자어로 가득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 지적되는 한자어에 대한 걱정은, 그들이 직업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此로써世界萬邦에告하야人類平等의大義를克明하며此로써子孫萬代에誥하야民族自存의正權을永有케하노라半萬年歷史의權威를仗하야此를宣言함이며二千萬民衆의誠忠을合하야此를佈明함이며民族의恒久如一한自由發展을爲하야此를主張함이며人類的良心의發露에基因한世界改造의大機運에順應幷進하기爲하야此를提起함이니是ㅣ天의明命이며時代의大勢ㅣ며全人類共存同生權의正當한發動이라天下何物이던지此를沮止抑制치못할지니라
나무 위키에 있는 기미독립선언서 원문을 가져왔다. 놀랍게도 '라떼는' 저 원문이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었다. 옆에 일일이 음을 달고, 현대어 해석본을 달달 외우면서 저 글을 '해석'해야만 했던 기억이 난다. 1910년에 독립선언서를 쓰고 읽을 수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 저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해석본을 봐야 하는 나는 '문해력이 부족한'사람이다.
조금은 젊은 세대의 입장을 헤아려보고, 조롱보다는 따뜻한 배려와 가르침을 주셨으면 한다. '吾等은玆에'를 모른다고 비난하는 선조보다는, '오등은 자'라고 풀어주는 선조님이, '우리는 이에'라고 풀어주는 친절한 선조님이 필요하다.
<EBS 다큐멘터리 및 유튜브 참고자료>
EBS - 당신의 문해력
B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 상대방이 어려운 말 쓰면 화나는 사람? 원인 파헤쳐보기
중년게이머 김실장 - [현직 교사 초대석] 우리는 아이들의 게임 과몰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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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리뷰 갤러리 - 요즘 10대들은 이런 단어도 모른다던데?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