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에 겪었던 통과의례 중 하나는, 맥주를 잘 따르는 것이었다. 2000CC, 3000CC 큰 통에 담겨 있는 생맥주를 각자의 잔에 나누다 보면, 맞은편에 있던 선배들에게 핀잔을 받곤 했다. 이유는 바로, 거품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떤 잔에는 거품이 반이나 들어 차 있고, 또 다른 잔에는 거품이 아예 없었다. 하얀 거품과 노란 액체가 적절한 비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들이 가진 '마시기 좋은 맥주'에 대한 철저한 기준이었다. 손이 매운 편이 아니라 몇 달이고 눈칫밥을 먹으며 연습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이 만족하는 맥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각자의 삶의 모습이 각양각색의 맥주잔으로 비쳤다. 누군가의 삶에는 거품이 가득하다. 번지르르한 말과 과장된 행동. 그러나 그 안의 실속은 없어 보이니, 좋은 맥주는 아닌 듯하다. 또 다른 이의 맥주잔에는 거품이 아예 없다. 군더더기 없는 삶이지만 그렇다고 또 마냥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강점에 대한 자기 PR이 부족해서 손해를 보거나, 지나치게 솔직하고 담백한 발언이 타인에게는 무례함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금, 거품과 액체의 비율이 완벽했던 생맥주를 떠올려본다. 내가 따르는 맥주잔의 거품은 어느 정도 일까? 거품을 빼는 게 좋을까, 채워 넣는 게 좋을까? 지금까지는 주로 거품을 빼는 데 집중하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거품이 가득한 사람으로 보였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거품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채워 넣고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에, 모두에게 맛있는 맥주가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만족할만한 맥주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빚어나가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