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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Nov 03. 2022

하루키를 베껴 쓴 한 달

새롭게 경험한 필사(筆寫)의 세계

10월 한 달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필사하는 모임에 참여했다. 하루에 한 번, 하루키가 쓴 책이라면 어떤 부분이라도 마음에 드는 구절을 써서 카톡방에 인증을 하는 방식이었다. 한 줄이건, 한 문단이건, 혹은 한 챕터 전부건 분량은 상관없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두는 문장을 모아 둔 적은 더러 있었지만, '각 잡고' 책 속의 문장을 그대로 베끼는 일은 처음이다. 어떻게 보면 귀찮을 수 있는 필사라는 행동을 하게 된 까닭은, 책을 한 번 꼭꼭 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속독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한 것도 있었고, 끝없이 읽기를 요구하는 학교 교육의 영향도 있었다. 시험 범위라서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텍스트가 아니라면, 그리고 <총 균 쇠> 나 <마의 산> 같은 벽돌 책이 아니라면, 혹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이 나의 지적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책이 아니라면, 어지간한 책은 하루면 다 읽을 자신이 있다. 


물론 속독은 가능하지만 순간기억 능력자는 아니기에, 지엽적이고 사소한 내용까지 기억하지는 못한다. 특히 소설의 경우에는 사건의 전개보다도 인물의 심리묘사와 감정의 전달이 중요한 경우가 많기에,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어릴 때는 같은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차라리 같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책을 읽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 모든 책이 거기서 거기 같다는 '책 불감증'에 걸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필사를 처음 할 때는,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책을 읽는 것만 같았다. 문장 속 조사까지 챙겨가며 글을 베끼는 것이 조금은 답답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베끼는 것마저 틀려서 펜으로 두 줄 직 긋는 일이 자주 있었다. 속도에 대한 강박이 몸과 마음을 지배한 결과다. 


하지만 점점 필사를 할수록, 책을 읽는 새로운 재미를 발견해나갔다. 문장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과, 문장 속에 나타난 작가의 의식을 음미하는 것이다. 옮겨 적을 정도로 좋은 문장, 가슴에 남는 글귀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견한 재미였다. 덩달아서 책 읽는 속도도 느려졌다. 필사 기간 동안 본 하루키의 책은 단 두 권이다. 그마저 한 권은 다 읽은 것이 아니라, 중간에 도서 반납일이 다가와서 다른 책으로 갈아 탄 것이다.


10월이 끝나고, 새로 쓰기 시작한 노트엔 19페이지만큼 비뚤비뚤한 글씨가 적히게 되었다. (주말/공휴일을 제외하고) 개근을 하게 되어 참가비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가끔 필사를 하기 너무 귀찮아질 때 책과 노트를 펼칠 수 있게 해 준 작고 귀여운 동기부여 장치였다. 


11월이 되었지만 필사 노트는 책장에 처박히지 않고 여전히 매일매일을 함께하고 있다. 하루키와의 시간이 끝나고, 새로운 작가가 만든 세계에 흠뻑 빠져가는 중이다. 필사를 하며 책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는 것. 소소한 노력과 성취이자, 동시에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또 다른 책의 세계를 탐험하는 아주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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