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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Nov 14. 2022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를 가져서 이기적이라고??

'책 꼰대'인 내가 싫어하는 '꼰대'같은 말들

꼰대를 정의하는 말은 다양하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란 '자기 생각을 지나치게 주장하고, 편협하게 그 주장을 합리화하는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이 말을 적용시켜보면,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책 꼰대'다. 책을 사유의 도구가 아닌 권위의 도구로 사용하는 행위를 몹시 싫어한다. 권위의 도구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면, '많은 책을 읽었다'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것을 마치 자신의 교양을 증명하는 훈장으로 쓰는 행동이다. 진짜 책 고수들은 그런 식으로 증명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 알 수 있다. 책이 굳이 목적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수단이 되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책 꼰대가 보고 있으면 넘어가기 너무 불편한 꼰대스러운 말들이 있다. 읽지도 않은 책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할 때 이용하는 경우,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텍스트의 일부를 전체로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경우다.


몇 년 전, 다음과 같은 훈화를 들은 적이 있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도 있듯이,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귀를 닫았다. 물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제목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읽어 본 사람은 동의할 것이다. 적어도 그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인간이 이기적이다'는 아니라는 것을. 내가 바라본 이 책의 중심 내용은 인간이라는 개체가 아닌 '유전자 관점에서의 생존 전략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이 오히려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하다는 증거도 굉장히 많다. 충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만,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주장은 다름이 아닌 틀린 문장이다. 나에게 있어 책의 제목만 가지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끼워 넣는 그 대화는 듣기 싫은 '꼰대'의 말이었다.


또 다른 일은, 세대 갈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성세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어떤 분이 배달의민족에 있는 '일 잘하는 11가지 방법'을 인상 깊게 보았다는 발언을 했다. 그다음 꺼낸 내용은 단 하나,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였다. 여기까지는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아한 형제들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니 처음으로 넣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후의 발언이 이상하다. "요즘 애들이 얼마나 근태관리를 안 하면 오죽하면 그런 당연한 내용이 1번입니까?"그 이후의 내용도 거의 전부 시간 관리를 하지 못하는 요즘의 세태를 한탄하는 시간이었다.


대화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만일 이 분이 처음부터 '근태관리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그 근거로, '배달의 민족에서도 9시 1분은 9시가 아니라며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그분의 말은 '배달의민족에서도 적어놔야 할 정도로 요즘 애들이 근태관리가 엉망이다'라는 결론을 지어버리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텍스트의 내용과 의미를 굉장히 왜곡할 우려가 있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는 말 옆에 작게 쓰여 있는 '우리는 규울 위에 세운 자율적인 문화를 지향합니다'는 보긴 하신 걸까? 그리고 또 하나,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해서 죄송하지만, 그 말씀하신 분은 2번에서 11번까지 내용에 대해서는 귀와 마음을 닫을 것이 확실한 분이셨다.


책을 다 읽어야 근거로 쓸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근거로 사용할 거라면, 최소한 저자의 뜻이 왜곡될 수준으로 인용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에겐 정말 불편하기도 하고. 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 꼰대의 간절한 부탁이다.


글을 다 쓰고 나니 한 가지 더 생각이 났다. <넛지>에 대해 출판사 서평이나 요약문만 한 번 보고는, 사람을 기만하는 모든 행동을 '넛지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넛지>에서 말한 넛지의 개념은 '사람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부드럽게 유도하되, 선택의 자유는 여전히 개인에게 열려있는 상태'이다.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조건은 보지도 않고, 말장난으로 선택을 사실상 강요해놓고는 넛지 전략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넛지>를 감명 깊게 읽은 책 꼰대 입장에서 굉장히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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