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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Nov 16. 2022

당신은 똥손이...아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 아니 생각


최근에 가장 애정을 가지고 하는 일은 글쓰기지만, 틈틈이 다른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림도 그려보고, 틈틈이 요리와 청소도 하고, 가끔 집을 수리하거나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는 것처럼 뚝딱거리는 일을 할 때도 있다. 사실 그동안에는 스스로에게 ‘손으로 하는 일은 못한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거의 관심이 없던 일들이다.


어쩌다 멀쩡한 두 손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는지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일단 선천적인 조건에 썩 좋은 편은 아니다. 팔도 짧고, 손도 아서 일상생활에서도 가끔 불편한 일이 있다. 특히 차를 정산 기계에 바짝 붙이지 않으면, 벨트를 풀거나 어쩔 때는 내려서 주차요금을 내곤 한다. 그래서 요즘에 사전 정산 시스템이 갖춰지고 있는 건 나 같은 사람에겐 정말 다행인 일이다. 그렇지만 신체적인 이유만으로 고정관념에 빠진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언제부턴가 가진 손 일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원인이었다.


손 쓰는 일을 두려워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초등학교 실과시간에 했던 바느질 수업을 하고 나서다. 처음 두 손으로 잡아본 실과 바늘을 꼼꼼하게 천에 넣고 빼는 일이 그때의 나에겐 무척 힘들었다. 서투른 바느질을 하다 손가락 이곳저곳을 찔리니 짜증도 나고, 점점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커졌다. 이런 일들은 마음을 비우고 차분히 해야 속도가 올라가는데, 오히려 마음만 급해지니 바느질이 잘 될 리가 없다. 결국 며칠간의 실습시간이 지나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다른 몇몇 친구들과 방과 후에 남아서 바느질을 해야 했다. 거의 2주는 그렇게 남아있어야 했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그때 느꼈던 마음은 ‘수치심’과 ‘합리화’였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부끄러움이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일으켰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래, 나는 손 쓰는 일을 못해’라는 식으로 합리화를 해버린 것이다. 손을 쓰는 일과 단절하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손을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 때도 야구나 농구처럼 손을 많이 쓰는 운동에는 흥미가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진로 선택의 시작인 문과-이과를 결정할 때도, 공대로 가게 되면 손을 많이 쓸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선택을 하게 되었다.  기능은 쓰면 늘고,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손을 잘 쓰지 않으니 손의 힘과 세심한 컨트롤은 더 어려워졌다. 그러면 손을 잘 못쓴다는 생각이 더 고착화되었다. 결국 어느 시점부터는 정말 손을 쓰는 일들을 남들보다 잘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이사를 하다 보니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손을 쓸 일이 늘어났다. 화장실에 물이 새면 유튜브를 보고 몽키 스페너를 사 와 열심히 조이고, 못을 박기 위해 정확한 지점을 찾아서 망치를 두드렸다. 사실 성인 남성에게는 그렇게까지 힘든 일이 아니고, 실제로 할 만했다. 일상적으로 손을 쓰는 일들은 재능과 상관없이 단지 조금 신경을 쓰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뒤늦게 바느질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손쓰는 일에 대해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아예 노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일찍 자신감을 가지고 손을 쓰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후회가 되는 건, 손을 쓰는 연습을 게을리했다는 사실보다, 스스로가 부족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마음과,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하고 쳐다도 보지 않았던 생각일 것이다. 끝까지는 못 올라가더라도, 하다못해 한 발짝은 충분히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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