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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Nov 22. 2022

애플 주식 살 걸 그랬다

윈도우&갤럭시 충성 고객이 쓴 맥북과 아이패드 입문기

살다 보면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나에게는 애플이 그런 존재였다. 90년대 초에 컴퓨터를 잘 아는 먼 친척집에서 '맥킨토시'라는 이름을 본 적이 있지만, 게임이 잘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 전혀 끌리지 않았다. 중고생 때는 아이팟, 대학교 때는 아이폰을 친구들이 몇 명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저렴하게 비슷한 것들을 살 수 있었다. 게다가 사무직 직원이 된 입장에서는 한글을 쓰나 워드를 쓰나 굳이 맥을 써서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으니 전혀 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전혀 생기지 않던 애플에 대한 관심은 M1칩이라는 녀석이 세상에 나오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즐겨보던 거의 모든 테크 유튜버들이 입을 모아 이 M1맥북을 찬양했다. 노트북 불가능의 삼각 정리 (저렴한 가격 - 좋은 성능 - 가벼운 무게를 동시에 만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멋있게 써본 것, 원래는 경제학 이론임)를 깨버린 괴물 같은 녀석. 물론 맥북이라는 것이 장점이자 동시의 단점이긴 하지만, 애플 물건에서 '가성비'라는 설명을 본 것이 거의 처음이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여러 가지 일이 있은 후에,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하고자 당근 마켓에서 새것 같은 맥북을 하나 구했다. 불과 1년 전에 생일 선물로 받은 노트북도 있지만, 그걸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원격 근무를 위해 깔아놓은 무거운 프로그램으로 벌써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회사의 향기가 남아있는 물건이기에 글쓰기의 자유로움과 어울리지 않았다.


사실 글을 쓰는데 스펙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 지금 스마트폰보다도 훨씬 못한, 90년대에 경험했던 486이니 펜티엄이니 하는 컴퓨터에서도 글을 쓰는 건 문제없었으니 말이다. 그보다는 전에 보지 못한 UI, 조금씩 쓰던 것과 같은 단축키, 처음 봐서 대면 대면한 맥 OS용 프로그램들에 익숙해져야 했다. 첫 경험이라는 신선함은 대개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으로 흐른다. 아마도 당근에 새것 같은 중고 맥북이 그렇게나 많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 참아 보니, 적어도 창작을 할 때는 신선함이 주는 효과가 불편함보다 훨씬 컸다. 기분 탓인가, 맥북으로 글을 쓰면서 글이 조금씩 말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꽤 그럴듯한 분석을 들었다. 낯선 환경이 두뇌에 주는 신선함과, 업무용이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한 환경이라는 마음가짐 덕분이라는 것이다.  결국 브런치에 올린 거의 모든 글들은 맥북으로 쓰고, 퇴고하고, 발행했다.


애플과의 두 번째 만남은, 결혼기념일 선물로 선택한 아이패드 미니였다. 골수 애플 마니아인 절친의 영업도 있었고, 빠릿빠릿한 Ebook리더기에 대한 니즈도 있었다. 그동안 전자책을 멀리한 이유 중에는 한국인의 속도에 어울리지 않은 기기들의 반응속도가 있었다. 특히 책장을 넘길 때 느낀 답답이 결정적이었다. 물론 한번 꽂히게 되면 반드시 사야 낫게 된다는 '아이패드병'에 걸려버린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받아서 써 보니, 책 읽기에 참 좋은 사이즈라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맥북이 귀찮을 때는 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만 가져가도 글을 쓰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 나름대로 투자한 만큼 잘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아이패드를 사고 나서, 친구가 그렇게 좋다고 했던 영업 포인트 중 하나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다른 기기들과 차원이 다른 '연동능력'이다. 두 기기간 파일을 옮기거나, 특히 클립보드가 공유가 된다는 것이 무척 편했다. 읽은 책을 정리할 때 특히 편했다. 전자책을 보다가 인상 깊은 문장을 패드에서 복사하고, 그대로 맥북에서 노션을 켜 붙여 넣기를 하니 정리를 순식간에 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메일이나 카톡 개인방으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어든 것이다. 별 것 아닌 편리함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애플의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 중 하나일 정도로 써 보면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정신없이 글을 쓰고 보니, 애플에 대한 '간증기'로 비칠 것 같다는 불안감(?)도 생긴다. 물론 지금까지 맥북과 아이패드를 써 보니 '충분히 돈 값을 하는 좋은 기기들'이다. 그러나 완전히 애플 생태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생각할 만한 것이 많다. 경쟁사 대비 비싼 것도 사실이고, 여전히 한국에서 사무 업무를 할 때 애플을 쓰는 것은 불편한 점이 있다. 아마 다음 휴대폰을 무엇으로 사느냐가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아이폰으로 넘어가는 순간 에어팟, 애플 워치 등등 온갖 물건들 함께 바뀔 것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사지 않아서 후회되는 애플의 아이템이 있다. 제목으로도 썼지만, 애플 주식이다. 그동안 많이 올라서(도 있지만) 하는 말은 아니다. 시장의 흐름과 무관하게 사용자 경험을 위해 노력하고 그에 부응하는 팬덤이 있다는 것. 머리로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정말 다른 차원의 강력함을 느꼈다. 물론 제대로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재무제표나 다른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야겠지만, 정성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최근에 아이패드를 추천해줬던 그 친구가 '일단 한번 잡숴 봐'라며 아이폰 12 미니를 추천한다. 추천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12부터 맥세이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왜 이렇게 나를 끌어들이려는 모르는 친구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이따금 당근에 아이폰 12를 검색해보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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