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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Nov 11. 2022

야구 다트 금지

목표'만'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



다트촉을 처음 잡아본 곳은 대학가의 어느 허름한 칵테일바였다. 학생 주머니 사정에 맞는 저렴한 칵테일을 한 잔 마시면, 잔돈으로 다트를 두어 판 즐길 수 있었다. 다트 판을 보고 처음 떠오른 것은 가운데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투수의 이미지다. 힘을 최대한으로 줘서 던지면 촉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직진할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정중앙에 꽂아 넣으면 되겠다는 욕망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졌다. 


세월이 지나고, 이제는 나름 괜찮은 분위기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오랜만에 다트촉을 다시 잡았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경고문 하나가 귀퉁이에 붙어 있었다. '야구 다트 금지'. 사실 다트를 던지는 정석은 촉이 적당히 포물선을 그리며 판에 꽂힐 수 있도록 힘을 적절하게 컨트롤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안전 문제도 클 것이고, 팔 힘이 너무 빨리 빠져 계속 던지기 힘든 점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게임의 규칙인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정중앙이 아니라 조금 더 위쪽, 20x3 지점을 공략해야 한다. 어떻게든 가운데 던져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과거의 나는 진짜 목표인 점수를 높게 받는 방법도, 내가 다트를 그렇게 던짐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야구다트 일화는 나의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인 '목표에 대한 집중'을 잘 보여준다. 예전부터 하나의 목표를 잡고 나면, 그것만 생각했다. 목표를 포착하면 정신없이 달려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찍은 사냥개와 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GRIT>을 읽어보니, 이 개념이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삶의 태도다. GRIT을 가진 덕분에 인생의 어려운 산을 여러 번 넘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어려운 일도, 목표에만 집중해서 천천히 하다 보면 어느새 끝이 나 있었다. 험준한 산을 오를 때 필요한 지팡이나 로프와 같이 나를 지탱해주는 도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목표에'만'집중했기에 생긴 문제들로 고통받고 있다.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다른 소중한 것들, 특히 내면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릿을 사용하는 것은 어떻게든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임을 간과했다. 한 번 고비를 넘었으면 충전을 해야 하는데, 충분한 휴식 없이 계속해서 더 높은 산을 오르려 애썼다. 아무리 효율 좋은 기계도 충전하지 않으면 멈출 수밖에 없다. 목표를 생각하고 더 버틴다고 해서 해결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동굴에 갇혀있을 때 우선 필요한 것은 지팡이나 로프보다는 랜턴일 것이다. 지금은 목표를 찾고 달리기보다, 잠시 멈춰 주위를 돌아보는 게 더 필요하다.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어렵다. 요가 수업 때마다 '애쓰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예를 들어 다리를 펴라는 동작을 한다면, 어떻게든 굳은 다리를 펴려고 온몸을 떨고 있다. 그렇게 애를 쓴다고 해서 상태가 나아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몸 전체의 몸을 안정시킨 다음, 굳어짐의 한계를 인정하고 천천히 다리를 펴 나가야 조금씩 가동범위가 확장된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고, 달리는 말을 타고 달리면 주변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옛말을 떠올리자. 오늘도 완벽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아쉬움에서 벗어나, 내가 가고 있는 삶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한 발 짝 떨어져서 바라보자. 잘 되지 않는 일인걸 알기에, 오늘도 브런치에서나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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