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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Dec 14. 2022

INFP라는 이유로 욕을 먹는다면

혐오의 대상이 되어보았다

인터넷 밈에 한해서, 나무위키는 가장 공신력 있는 사이트 중 하나다. 여기에는 16가지 MBTI 중 단 한 가지 유형에 대해서만 별도로 등록된 단어가 있다. 바로 INFP에 대한 비하 표현인 '씹프피'이다. (링크) MBTI에 과몰입한 나머지, 특정 성향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종종 보아왔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인프피에 대한 비난은 별도의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많은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주변 인프피에게서 겪은 부정적인 경험을 근거로 유형 전체를 비난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연애를, 친구를 오래 보니 왜 씹프피인지 알겠다'라는 식의 글이다. 나의 성향이기도 하기에 과민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아무리 봐도 이건 인프피에 대한 혐오 표현이다.



혐오를 '누군가가 가진 특성에 대해 무조건 싫어하는 행위'로 정의한다면, 고백하건대 나는 혐오의 대상자가 되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혐오로 흐르기 쉬운데,  성별, 지역, 직업, 신체 등 거의 모든 요소에 대해 소수자의 입장이 되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로부터 아무 이유 없이 혐오의 당사자가 된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안타깝게도 이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의외로 어렵다. 인프피를 욕하는 글에 댓글로 '전부가 그런 게 아니다', '일부 사례로 전체를 매도하지 마라'라는 내용이 올라오면, 단번에 반박이 달린다. 괜히 찔리니까 댓글을 단다는 의견, 내가 겪은 인프피들은 다 그렇던데 왜 아닌지 증명해라는 의견, 심지어는 개인의 의견이니 참견하지 말라는 글까지 본 적이 있다. 


이성적으로 살펴보면 반박할 가치조차 없는 비논리적인 주장이지만, 저런 혐오가 만연하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함을 넘어 위협이 된다. MBTI는 스몰토크 주제로 많이 사용되는데, 나의 유형을 들은 누군가가 그것만으로 나를 나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친다. 심지어 어떤 연예인은 인스타 라이브에서 다른 연예인에게 직접 당한 적도 있으니, 당사자 입장에서는 결코 가볍게 넘기기 힘든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다른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나마 이 MBTI는 보이지 않으니 아예 다른 유형이라고 이야기하면 끝이다. 검사지를 요구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유형이라는 건 바뀔 수 있으니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숨길 수 없는 요소로 혐오의 대상이 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TV 프로그램에서 봤었던, 첫 손님이 여자면 재수 없다는 이유로 들어오자마자 쫓겨났던 사람들.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거지라고 불리며 놀림받았던 어린이들. 같은 지역 출신 범죄자가 뉴스에 나오면 바로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가해 역시 누군가는 단지 재미에, 또는 전에 당했던 경험에 기반할 것이다. 누구나 옳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누군가 분명히 하고 있는 행동이다. 그들이 던진 돌에 무방비로 맞아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고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나조차, 얼마 전 'ESTJ는 나랑 너무 안 맞는 것 같아서 좀 그렇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인 이상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들의 MBTI를 물어보거나 알게 된 적이 없는데도, 막연히 행동과 말투를 보고는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ESTJ에 대한 혐오를 표현한 것이다. 앞으로는 절대 생각하지도, 꺼내서도 안 될 말이라고 반성해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실제로 당해봤으니 더욱 확실하게 머릿속에 새긴다. 사람을 하나의 요소로만 평가하지 말 것. 그리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혐오로 발전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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