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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Nov 21. 2022

등산길에 만난 회사 직원(으로 착각한 사람)

지난 주말, 뒤늦게나마 단풍 구경을 하기 위해 가을 경치로 유명한 근처 산사를 찾았다. 이미 스산한 겨울 기운이 다가와 버린 탓에 낙엽이 더 많았지만, 기왕 발걸음을 했으니 절이라도 한 바퀴 둘러보고 가자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다.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다가 갑자기 심장이 철렁거리기 시작했다. 회사 근처에 갔을 때 느끼는 그 싸한 감정이다.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얼굴이 제법 익숙하다. 잠깐 모셨던, 지금도 회사에 계시는 어느 높으신 분과 너무나 닮았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심박수도 비례해서 올라가는 것만 같다. 조금 추워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었던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초조함을 느끼며 점점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그 사람과 지나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분이 아니었다. 반대편 등산객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체형과 헤어스타일을 보고 지래 짐작했던 것이다. 날뛰던 심장이 다시 고요해졌다. 떠올랐던 분과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회사에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생각이 공포로 변해 몸 전체를 지배해버린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건넬,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마저 대답하기 힘들겠다는 회피의 감정이기도 하다.


많은 심리학 책에서 회피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이미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마음이 수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다시 한번, 자책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보기로 한다. 아직은 마음이 많이 불편하구나. 아직은 나에게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그래도 눈치채고 뒤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음을 대견하게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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